매일신문

시와 함께

속옷인 걸, 하며

버티고 있던 것

그래, 그것을 벗었다.

간밤 태풍에 뜯겨져나간 소나무의

회복할 수 없는 뿌리

그걸 알면서도

뾰족한 솔잎 사철 휘감던

초록 붕대, 그 무관심을 풀었다.

나무들 굳은 껍질끼리만

눈치챌 수 있는

상처 자욱한 소나무

피흐르는 속살로 새벽길 열며

깊은 숨 들이쉴 때.

백미혜 '깊은 호흡'

이 시는 한 인간의 쉽지 않은 단호한 결단이 오히려, 소나무로 친다면 예사 소나무가 아니라, 울진의 금강송 쯤으로 자리 잡아 가는, 시인의 저 가슴 깊은 곳의 숨소리를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더 이상 상처 자욱한 소나무가 아닙니다.

오래 답답하게 했던, 뾰족한 솔잎을 휘감고 있던 붕대도 풀었으니, 새로이 감각도 살아나고, 의식도 한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이 시인은 또한 화가이기도 해서 벌써 다음 전시회에는 어떤 색깔의 바다가 펼쳐질까? 적이 기대가 됩니다.

이 시는 또한, 충분한 사유와 언어의 적확한 표현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을 잘 보여줄 만큼 수사의 기운 자국이 보이지 않는 시입니다.

박정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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