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렇게 살아요-이자성·김화순씨 부부

전통 수작업으로 '천년불변' 품질 유지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말린 후 가마솥에 넣고 6시간을 삶는다.

표백처리한 닥나무를 분쇄기로 갈고 씻어낸 후 물에 섞는다.

직통(한지틀)에 넣어 떠내면 한지가 만들어진다

하루를 꼬박 일해 만든 한지는 800∼900여 장 정도이다.

"천년을 가는 한지의 신비로운 비밀은 좋은 국내산 닥나무에다 한지장(韓紙匠)의 혼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

지난 1966년 10월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던 중 사리함에서 작은 종이뭉치가 발견됐다.

바로 세계 현존 목판 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 습기찬 석탑 안에서 1천200년을 견뎠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종이 상태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이자성(56·경북도 무형문화재 23호 청송한지장 기능보유자)씨는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서 이처럼 위대한 우리의 문화유산인 한지를 5대째 가업으로 만들고 있다.

이씨와 부인 김화순(56)씨는 요즘 쉴 틈이 없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거둬들인 자생 닥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삶아서 한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풀이 상해서 냄새가 나고 껍질이 두꺼우면 종이가 퍼지기 때문에 1년생의 보송보송한 국산 닥나무만 사용해야 합니다.

" 무형문화재 23호인 부친 이상룡(87)씨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온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

전통적인 손작업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새벽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꼬박 일해 만들어내는 한지는 하루 800∼900장 정도. 그나마도 한달에 작업할 수 있는 날은 10여 일뿐이고 나머지는 준비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전통 한지를 만드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다.

먼저 250근(150kg)의 닥나무를 골라 껍질을 벗긴 후 햇볕에 말린 다음 다시 가마솥에 넣고 6시간 동안 삶는다.

다시 삶은 닥나무 껍질을 말린 다음 가성소다를 첨가해 새로 삶고 표백처리를 한다.

분쇄기로 갈고 깨끗이 씻어내면 비로소 2천500여 장의 한지를 만들 수 있는 기본 작업은 끝난다.

이것을 물에 섞으면 풀처럼 흐물흐물해지는데 직통(한지틀)에 넣어 떠내면 한지가 만들어진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는 데 걸리는 시간만도 꼬박 이틀. 분쇄기로 가는 것을 제외하면 전 공정이 이씨 부부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다.

값은 한 장에 500원.

부인 김씨는 "빠듯한 살림이어서 남의 일손 빌리기도 어려워 부부가 한지틀 앞에 매여 산다"고 말하며 웃었다.

200년 넘게 이어온 청송 한지의 명맥을 이어오고는 있지만 이씨의 한지 공장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02년 4월 전기누전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공장 80평과 한지 틀(3조), 집기, 닥나무 50t이 잿더미가 됐다.

그 뒤 벽돌을 한장한장 쌀아올리고 비닐을 덮어 비만 피한 채 지내오다 지난 2003년 서예가 서산 권시환(56)씨의 도움으로 겨우 비닐을 걷어내고 패널로 지붕을 새로 얹었다.

다만 아들 규철(26·고려대 무역학과 4년)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것이 그저 고맙기도 하고 위안이 된다.

서예가 권시환씨는 "청송 한지는 값싼 중국산 닥나무를 사용한 다른 지역 한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명품"이라며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윤경희(48·청송군 청송읍) 경북도의원은 "청송 한지의 보전을 위해 청송군과 도의회 차원에서 지원을 검토하고 한지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연락처 054)872-2489. 청송·김경돈기자 kdon@imaeil.com사진: 이자성씨가 부인 김화순씨와 함께 한지틀을 이용해 한지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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