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애인 주차공간 점령한 정상인들

표지만 붙인 채 맘대로…단속도 거의 안돼

23일 오후 3시 30분쯤 대구 북구청. 장애인 표지가 앞유리에 부착된 2천500㏄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에 멈춰선 후 신체 건장한 40대 초반의 남성이 내렸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차량 소유자는 1942년생 이모씨로 돼 있었고 차량은 '장애인 가족용'이 아니라 '본인 운전용'이었다. 본인이 운전할 경우에만 전용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있다는 뜻. 잠시 뒤 하지관절장애 5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 김모(37)씨가 차를 몰고 구청 안으로 들어섰지만 주차장이 꽉 차버려 10여 분 간 빙빙 돌기만 했다. 김씨는 "신체 건장한 사람도 장애인 차를 몬다는 이유로 전용주차장을 차지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장애인 자동차 표시제가 겉돌고 있다. 작년 5월부터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장애인 스티커'를 보행상 장애 유'무에 따라 '주차 가능', '불가능' 등 4종류로 구분 발급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장애인 차량 표시제는 장애인 자동차 표지를 부착했더라도 보행상 장애인이 탑승하지 않은 차량은 주차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 한 명 없는데도 장애인 차량이라는 이유만으로 전용공간을 차지해버리는 얌체족 때문에 정작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전용주차장을 이용하지 못한다.

달서구 성서지역 한 대형 할인점. 매장 입구 쪽에 20면 이상의 장애인 주차공간이 있지만 한창 붐빌 때면 빈 자리 하나 없이 승용차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하지만 타고 내리는 사람들 중 외견상 장애인은 10명 중 한 명꼴이 채 안됐다. 운전자 이모(35'달서구 장기동)씨는 "아버지가 장애인이어서 스티커를 발부받았다"며 "외출을 싫어하셔서 우리 가족만 쇼핑을 왔는데 뭐가 잘못됐느냐"고 되물었다. 이씨가 타고 온 차량에 부착된 스티커 역시 '본인 운전용'이었다.

주차불가 장애인표지 부착차량, 또는 장애인 탑승 없이 전용구역에 주차한 차량에 대해서는 적발시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되지만 실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탈부착이 쉬운데다 건물 벽면 쪽으로 주차할 경우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 장애인 표지를 빌려주는 행위도 성행하고 있지만 적발시 과태료 200만 원 부과 규정만 있을 뿐이다.

지난해 장애인 차량표지 제도가 바뀐 이후 대구지역 8개 구'군청이 적발한 위반사례는 고작 73건. 그나마 장애인이 탑승하지 않았는데 전용주차장을 이용한 편법이용 적발은 단 한 건도 없다.

구청 관계자는 "일반 차량이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하다가 적발되는 경우는 2003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며 "그런데도 장애인 주차장이 부족한 것은 편법 이용 때문인데, 운전자마다 붙잡고 장애인 탑승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단속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대구에는 2004년 6월 말까지 장애인 자동차 표지 3만2천93건이 발급됐고, 이 가운데 장애인이 탑승할 때만 전용주차구역에 주차가 가능한 차량은 1만8천414대에 이른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