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전문가들은 세상을 부양할 유일한 방법이 살충제와 화학비료를 대량 살포하는 거대 영농기업을 지원하고 수만 톤의 곡물과 호르몬, 항생제를 가축들에게 퍼붓는 거대 사육장을 육성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퍼뜨리고 있다. 게다가 고도로 집중된 공장식 영농시스템이 우리의 장기적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반드시 보전해야 할 자원을 급속하게 파괴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경고하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이 심장질환에서부터 광우병, 항생제 내성 증가 같은 우리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을 만들고 있는데도 말이다.
'푸드퍼스트'로 널리 알려진 식량발전정책연구소의 설립자인 프란시스 무어 라페와 그의 딸 안나 라페가 지은 '희망의 경계'는 조만간 닥칠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방법들에 유쾌한 메스를 들이대는 책이다. 책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저자의 생각을 좀체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책 표지에 '풍요한 세계에서의 빈곤과 굶주림의 역설'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다.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저자는 '지구가 우리를 부양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으며 손을 쓰지 않으면 곧 대기근에 이를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욱 많은 농약과 더 큰 규모의 농장, 그리고 더 많은 유전공학만이 대안'이라는 전문가들의 전투명령이 사실은 잘못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방식이 식량 위기를 더욱 가중케 하고 있다는 것.
저자의 주장은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감소하던 전 세계적 굶주림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유엔의 발표가 나왔다. 전세계를 통틀어 약 8억5천200만 명이 빈곤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으며, 매년 500만의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것.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12억이 넘는 사람들이 과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10년 동안 당뇨병으로 진료를 받은 국민이 400만 명을 넘어섰단다. 전체 국민을 100명으로 가정했을 때 8.3명이 당뇨 관련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되어버린 비만과 당뇨로 인한 사회적 부담은 만만치 않은 액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라페 모녀는 그 희망의 끈을 잡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기적 같은 농원에서부터 브라질 벽촌의 땅 없는 농민들의 초라한 움막까지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희망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 어떻게 패배적 관념에서 벗어나 희망을 일구는지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식탁 위에 고기를 올려놓으려 자원을 낭비하는 바람에 풍요한 세계의 한복판에서 빈곤과 굶주림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창조한 패스트푸드 사회는 비만과 당뇨라는 '영양실조'만을 낳았으며, 고기 생산에 과도하게 자원을 낭비하게 됐다. 심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그곳에서 생산되는 곡식의 70% 이상을 굶주린 사람 대신 가축에게 소모하는 등 지구 반대편에서 기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낳고 있다."
저자는 육류 위주의 식단은 인류에게 다양한 질병과 굶주림만을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전세계 9개 나라에서 만난 기업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좋은 식량을 기르고 먹음으로써 삶을 긍정하는 가치와 공동체를 가꾸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이렇게 외치고 싶을지 모른다. "여전히 지구에는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릴 식량이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있다. 미리 호들갑떨지 마라."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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