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 오늘-을사5적 암살 미수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지 2년 뒤인 1907년. 그 앞잡이 노릇을 하며 온 겨레의 분노를 자아냈던 '을사5적신(이완용'박제순'권중현'이지용'이근택)'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3월 25일 일어났다. 이날 벌어진 암살 기도는 가장 조직적이고 큰 계획으로 나인영'오기호 등이 주도했다.

나인영 등은 조약 체결 이전 일본에 건너가 각계 인사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고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조약이 성사되자 이들은 암살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일시 제거를 목적으로 이들은 김동필'박대하 등 동지를 포섭하고, 무기와 자금을 준비했다.

암살단이 최초 거사일로 잡은 것은 대신들이 몰려드는 1907년 음력 설, 2월 13일이었다. 이 계획은 지방에 있던 가담자들의 상경이 늦어져 중지됐고, 그 후 두 차례 연기되고 나서야 3월 25일로 거사날이 확정됐다.

그러나 이 날의 결과도 실패였다. 대부분 엄중한 호위로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이완용 저격조는 시장하여 주막에 잠시 들른 틈에 그를 놓쳐버렸다. 권중현 담당조만이 권총을 발사했지만 명중시키진 못했다. 이후 많은 관련자가 체포되고 대부분 간부들이 자수함으로써 민족의 반역자 처단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이 날의 실패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사라지지 않는 악령으로 남아 있다. 요즘의 독도 사태를 단순히 넘겨볼 수 없는 까닭이다.

▲1867년 이탈리아 음악가 토스카니니 출생 ▲1881년 영남지방 유생들, '만인소' 상소 ▲1969년 국내 최초 신장이식 수술 성공 ▲1989년 문익환 목사, 베이징 경유해 북한 방문.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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