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거풍토를 볼 때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자는 일단 절반의 성공이 보장된다. 정치에 관한한 지역감정이 숙지지 않고 있는 데다 이념과 연령별 갈등이 표출되면서 특정정당에 대한 표쏠림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기에 정당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자는 자연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최근 몇차례 선거에서 정당공천의 위력은 폭발적이었다. 당선자의 정당 분포를 지도로 그려보면 지역별 색깔이 뚜렷이 구분된다. 영남에서 한나라당 공천은 당선 보증수표였고 호남에서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는 투표는 해보나마나 그대로 낙선이었다.
그러나 공천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뒷말을 낳는다. 제왕적 총재가 공천권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옛 이야기가 된 지금, 정당마다 공천위원회를 만들어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후보를 선발해도 여전하다. 공천헌금과 관련된 의혹은 사라지고 있지만 누가 누구를 밀었다거나 일찌감치 낙점이 됐다는 등 수수께끼들이 해답없이 넘어가고 있다. 내달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일부지역의 공천 과정에서도 뒷말이 나돈다.
공천의 위력이 강해지자 대부분의 후보들이 공천 경쟁에 목을 건다. 대구'경북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쉬운 선거를 했다고 하면 정색한 채 목소리를 높인다. 후보가 된 이후 투표까지의 선거는 쉬웠을지 모르나 후보가 되기까지의 공천 과정에서 죽을 고생을 했다고 강변한다. 결국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으로 주민의 대표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몇몇 정치 전문가의 손에서 주민들의 대표가 결정되고 있는 셈이다.
주초 대전에서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가 의장단회의를 열고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을 현대판 매관매직이라고 규정하고 정당공천제 폐지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결의했다. "최근 시장'군수'구청장 후보 선출을 둘러싼 공천헌금 수수 문제가 불거진 것을 계기로 다시 한번 정당공천제 폐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1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이자"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단체장 스스로 공천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내년 선거에서 공천탈락의 위험을 벗어나고 나아가 기득권을 이용해 쉽게 당선되려는 욕심이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다. 지방자치단체는 재정자립도가 낮기에 공천을 폐지할 경우 지자체는 모두 중앙정부의 지배체제하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고 야당은 지방조직을 잃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입장이 다르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는 자치행정을 위해 도움이 안 된다는 여론과 정당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필요하다는 여론 사이에서 대세는 공천폐지라고 본다. 당의장이 연초 기자회견을 통해 기초단체장 공천폐지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물론 한나라당이 "지자체를 장악하려는 음모"라며 반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뜨거운 감자 신세가 되어 있다.
단체장의 정당 공천이 필요한지 여부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명분만으로 답을 찾을 일이 아니다. 기초단체장 직선제가 제도 창출 당시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지만 어쨌든 단체장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게 한 이유는 바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다.
각종 경제지표에서 낙후성을 드러내고 있는 대구'경북은 대부분의 단체장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그러나 야당 간판을 달고 있는 단체장이 과연 얼마나 중앙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아내 주민들의 삶을 살찌게 했는지는 의문이다. 지역 어느 단체장은 국책사업의 유치를 위해 정부 실력자에게 "한나라당을 탈당하겠다"며 매달리기도 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대구'경북에서 무차별적으로 표를 가져간 한나라당이 대구와 경북을 위해 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싹쓸이를 해 살림을 키운 한나라당이 이제는 대구'경북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위함도, 특정 정당의 권력장악 때문도 아니다. 국민들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하자는 게 목적이라면 대구'경북의 토양에서 성장한 한나라당이 이제는 대구'경북을 놓아주어야 한다.
정치2부장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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