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통사고인가, 아내 살해인가

경북의 중소 도시 외곽의 잘 닦인 국도를 승용차가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승용차가 10t 정도 무게가 나가는 마을 표지석을 들이받았다. 마을 입구에서 맥주를 마시던 동네 사람들이 충돌 소리를 들었으나 대수롭지 않은 사고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사고 차에서 인기척이 전혀 없자 마을 사람들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운전석의 여자는 안전띠를 맨 채 숨져 있었다. 차의 오른쪽 뒷문은 열려있고 한 남자가 도로에 떨어져 정신을 잃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초보 운전자인 부인이 저녁을 먹은 후 남편을 졸라 운전 연습을 하던 중에 사고가 난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은 조수석에서 부인의 운전 연습을 도왔다. 언뜻 부인의 운전 미숙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이나 일직선 도로에서 사고가 난 점이 의심됐다. 경찰은 남편에게 운전 중 싸우거나 말다툼이 있었는지 추궁했다.

사망자에 대한 부검도 실시됐다. 의사의 부검기록에 따르면 특별히 치명적인 외상이 없으며, 목 부분 앞쪽에 작은 타박상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타박상 흔적의 안쪽으로는 피하 출혈이 동반돼 있다. 그리고 목 뒤쪽에 넓은 부위에 피하 출혈이 있고, 오른쪽 발목에 작은 크기의 가벼운 찰과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견을 종합해 사인을 '경부 압박 질식사'로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남편이 부인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한 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남편은 검찰에 송치된 후에도 억울함을 계속 호소했다. 검사는 피의자가 살인을 부정하기 때문에 기소 전에 법의학 교실에 재감정을 의뢰했다.

법의학팀은 경찰 조서와 부검기록 그리고 사진 등을 검토하고 현장조사를 했다. 사고 현장부터 차량 정비공장에 보관 중인 사고 자동차까지 확인했다. 그러던 중 사고가 난 차량에서 발견된 브레이크 페달의 특이한 무늬가 사망자의 오른쪽 발목에 난 찰과상 흔적과 같은 것을 확인했다. 살해되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를 찾은 셈이다.

발목에 생긴 이 작은 상처 하나가 자동차가 표지석과 충돌할 당시에 부인이 운전을 하고 있었고 또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흔히 자동차 사고로 인해 여러 명이 다치거나 사망했을 경우 살아난 사람이 죽은 사람을 운전자로 지목하는 경우가 많다. 법의학에서 운전자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가 특징적으로 다칠 수 있는 손상을 찾아야 한다. 운전자가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머리 부분과 가슴이 각각 앞 유리창과 핸들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운전자의 무릎은 계기판에 부딪히며, 흔히 급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다가 오른쪽 발에 손상을 입기 쉽다. 법의학은 무고한 혐의자에 대해 무죄를 입증하는 일도 한다.

채종민(경북대 의대 법의학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