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청으로 하는 전쟁은 진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고이즈미 일본 총리,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 네 사람이 골프를 치러갔다. 맨 먼저 부시가 첫공(드라이브 샷)을 날렸다. 그런데 공이 약간 휘어지면서 멀리 숲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오비'(공이 똑바로 가지 못하고 말뚝 선 바깥으로 나가버린 잘못친 경우)가 난 것이다. 공을 친 부시는 오비 난 걸 짐작하면서도 행여나 싶어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에게 물었다.

'오비 맞습니까?'

먼저 고이즈미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아리까리 데스네~'

속으로는 분명히 오비가 난 걸 알면서도 아리까리(알쏭달쏭의 사투리)라는 불분명한 대답을 한 것이다.

이번엔 시라크에게 물었다.

'오비 났나요?'

'애매모우~'

시라크도 속으로는 오비인 줄 알면서도 입으로는 애매모호하다며 둘러서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에게 물었다.

'제공 오비 난 것 맞습니까?'

그러자 노 대통령이 거침없이 큰소리로 말했다.

'오비 맞습니다 맞고요!'

오비가 나면 점수가 2점이나 뒤지게 되니까 부시로서는 기분 상하는 일이다.그래서 앞의 두 사람은 친선골프모임분위기와 상대 기분을 고려해 딱 잘라 '당신공 오비 났소'라는 대신 두루뭉술 피해가는 대답을 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면전에 대고 '맞습니다'에다 '맞고요'까지 붙여버렸다.노 대통령의 직설적인 외교 발언 스타일을 풍자한 묵은 '개그'다.외교발언이란 때론 뻔한 사실조차도 국익 등을 고려해 우회적이거나 모호한 용어를 통해 협상의 여지를 두는 것이 기본으로 통한다.

독도 문제를 두고 '뿌리뽑겠다', '외교전쟁'등 잇달아 토로한 직설적 강경 발언들은 국민들의 카타르시스를 풀어주는 속시원한 말일 수도 있지만 외교발언을 그런 식으로 해버리면 그 다음 외교팀은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국민이란 이름의 대중들은 지도자의 자신에 찬 호언장담에 쉽게 이끌린다. 이번 예처럼 '외교전쟁'을 외치면 '우리가 이길 자신 있으니까 저런 말을 하겠지'라고 믿으려드는 속성같은 것이다.

반면에 막상 뿌리를 뽑고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면 외교전쟁에서든 무력전쟁에서든 이기고 봐야 하는 건데 과연 싸우면 이기기는 이길건가 라는 현실적 의구심도 함께 품게 되는 속성을 지닌 것도 대중이다.지금 우리 사회에서 독도를 둘러싼 분쟁의 가상적 결말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서로 상반된 관점과 생각들이 충돌하며 대중의 속성을 혼돈시킨다.

하나는 소설가들이 생각해내는 낭만적 독도해법의 관점이고 하나는 군사전문가쪽이 보는 전술적 관점이다.어떤 소설은 한일 축구 시합으로 독도 영유권을 결정하자는 얘기도 쓰고 있고 어떤 소설은 미국의 7함대가 분쟁을 최종 조정한다는 해법을 내 놓고 어떤 소설은 한국 해군이 자위대에 완패한 뒤 북한의 대포동 핵미사일이 요코하마에 떨어지면서 일본을 깬다는 가상적 승전을 그리고 있다.

대통령의 시원한 말만큼이나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풀어주는 신나는 줄거리요 결말이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나면 전함을 끌고 독도 앞바다에서 함포를 겨눠야 하는 군인은 다르게 말한다. 며칠전 한국해양전략 연구소 모임에서 전직 모 해군참모총장은 '독도분쟁으로 한일해전이 터진다면 한나절도 안 걸려 패전한다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해 '반나절보다 더 짧을지도 모른다'고 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 영국 군사전문기관(The military Balance)자료 보도에 의하면 한국의 주요 수상함(水上艦)은 구축함 등 16척, 일본은 54척, 잠수함은 일본 16척에 한국 9척 그것도 장보고급 우리 잠수함은 만재톤수가 1천100t 수준이나 일본 오야시스급은 3천t에 승조원수도 배가 넘는다. 가공할 화력을 지닌 이지스함은 일본 4척에 한국은 단 한척도 없다.

반경 180마일 안의 모든 물체를 잡아 한번에 18기의 방어불능 미사일을 동시 발사, 몇십초 만에 한국의 거의 모든 수상함을 격침 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국민들은 지도자의 호언장담과 소설가들의 상상력, 그리고 전 해군 참모총장의 우려섞인 경고 틈새에서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게 된다.

화나고 자존심은 상하지만 뾰족한 수나 힘(군사'경제적)도 준비하지 못한 채 마지막 막말 카드를 쉽게 던져버리는 나홀로식 외교발언으로 공식 외교팀의 협상 운신폭마저 좁혀버린 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내 실력과 힘이 길러질 때까지 속내 드러내지 않고 와신상담 기다릴 줄 아는 대륙적 외교술에 비하면 하수(下手)가 아닐 수 없다. 하수의 입이 시냇물이라면 고수(高手)의 입은 깊은 강물과 같다. 외교'경제 전쟁은 소설읽기나 목청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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