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아름다운 '遺産 기부'

TV 연속극을 보면 짜증스러울 때가 많다. 재벌 그룹 회장의 자녀들을 등장시켜 애정 행각을 통한 신분 상승 이야기를 엮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부(富)의 세습을 당연시하며, '내 가족, 내 자식'만 아는 가족이기주의에 찌들어 있음을 말해주는 건 아닐는지…. 실제 부의 대물림을 위한 상속세 탈세 등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는 재벌들과 부유층 인사들이 적지 않다. '아버지 재산이 내 재산'인양 돈을 마구 뿌리거나 패륜적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수그러들지 않는 게 현실이다.

◇ 그러나 우리 사회의 다른 한편은 어떤가. 끝 모르는 경기 침체로 실직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직장 한번 구경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등 서민들의 삶은 '피폐 일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현들은 사람에게는 원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고, 이 본성을 따를 때 베푸는 사람이나 베풂을 받는 사람 모두가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떠나는 '유산 기부' 움직임이 점차 활기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본부에 따르면, 이 운동에 동참하기로 약속한 회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란다. 1984년 작은 모임으로 이 운동이 시작된 뒤 2002년까지 매년 40명 안팎으로 늘다가 2003년엔 66명, 지난해는 85명이 늘어 현재 회원은 864명이라 한다.

◇ 출범 때 한경직 김경래 등 종교인과 손봉호 교수(서울대), 단 3명이 외롭게 기치를 들었다. 그 이후 '재산의 3분의 1만 후손에게 남기고, 3분의 1은 어려운 처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베풀며, 나머지는 사회복지시설 등 불특정 다수를 위해 사용하자'는 취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유산 기부는 아직 극소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질 뿐 '사회적 관행'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먼 느낌이다.

◇ 이 운동은 '재산은 사회적 생산'교환 과정에서 축적되므로, 일정 부분을 사회에 돌려주고, 자녀들에게는 대신 성실성과 도덕성을 물려주자'는 뜻을 지니고 있어 그지없이 아름답다. 더구나 부당한 부의 축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끊이지 않고, 재산 상속을 둘러싼 추악한 싸움과 가족끼리 살해 사건까지 잇따르는 현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새봄과 함께 측은지심의 소생을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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