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 일기

지난해 9월쯤일 것이다. 6교시 도덕시간을 마치고 종례를 할 무렵, 느닷없이 한 사내가 교실에 뛰어들어왔다. 험상궂은 인상과 얼굴에 난 상처들이 꼭 조폭 같은데, 누군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미영(가명)이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부른다. 미영이가 놀란 표정으로 조금만 있다가 간다고 하자 그 사내는 입고 있던 군용 야전 상의를 교탁에 집어 던지며 죽일 듯 미영이에게 달려갔다. 당황스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사내의 앞길을 가로막으니까 '뭐야' 하고 소리치며 나의 손을 뿌리쳤다. 곧 덤벼들 태세였다.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교실에서 이 무슨 행패냐고 큰 소리쳤더니, 사내는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네가 뭔데 참견이냐는 식이다. 여기는 교실이고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더니, 이내 그 사내 입에선 욕설이 한 뭉텅이씩 튀어나왔다.

어느덧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다. 미영이가 가방을 싸서 교실을 나갔다. 이 사내는 뒤따라 나가면서 계속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학생들 보는 앞이라 차마 맞대꾸도 못하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금씩 삭이고 있으려니 사내는 유유자적하며 교실을 나갔다. 그 사내는 미영이 백부였다. 아침에도 얼핏 본 기억이 났다. 아침에는 유리병 하나 들고서 미영이 동생반에서 행패를 부렸단다.

그 사내가 사라지자, 애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조금씩 질문을 한다. "선생님 왜 그 사람 안 때렸어요?" "선생님 왜 그 사람 경찰에 넘기지 않았어요?"

할 말이 없었다. 이 사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나 자신도 당혹스러웠다. 이런 사태를 눈 앞에서 함께 경험하고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정의로운 사회를 얘기하고, 어떻게 인간 존중을 가르칠 것인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종례 후 교무회의 시간이라 교무실에 갔더니, 여교사들이 웅성거렸다. 그 사내가 온 학교를 돌며, 여교사 혼자 있는 교실에서 선생님들께 치근덕거렸다고 한다. 정말로 분노가 치밀었다. 정말 학교 정문에 검문초소를 하나 만들던가, 교사들에게 가스총이라도 하나씩 지급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다음날 미영이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불러서 상담을 했더니 아이들이 자꾸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봐서 더 이상 부끄러워 학교에 못 다니겠다고 말했다. 결국 추석이 지난 어느 날 미영이는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다.

학교에 교권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랜 것 같다. 잘난 학부모들은 잘난 대로 교사를 무시하고, 못난 학부모는 못난 대로 교사에게 행패를 부린다. 아이들이 뭘 배울까?

학부모들이 사고를 칠 때마다 교사는 맥이 빠진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정도 떨어진다. 학부모들이 저지른 사고 때문에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교사를 신명나게 만들어줘야 아이들이 신명나게 공부할 수 있을 텐데. 교권이 존중받고, 학생이 행복해지는 그런 교실을 꿈꾸어 본다.

정왕기(월곡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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