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노점상이 전하는 대구경기 '최악'

경기가 살아난다고들 하지만 노점상들이 전하는 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한 노점상은 "취직도 안되고 먹고 살 길도 막막하다보니 너도나도 뛰어들어 노점상이 몇년새 2배나 늘었다"고 푸념한다.

△경기 전망은 있는 사람들 몫일 뿐.

대구 서구 평리4동 남평리네거리 한 쪽에서 1t 트럭을 내놓고 과일상을 하는 서정부(45·달서구 용산동)씨. 트럭에 몸을 기댄 채 라디오 뉴스를 듣던 그는 경기 전망은 엉터리라며 목청을 돋웠다.

"같은 나라에 살아도 달세, 사글세 사는 사람은 다른 인종 아닙니까? 경기 풀린다는 소문도 다 있는 사람들이 꺼내는 얘깁니다."취재진은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 서씨 곁에서 물건을 팔아봤다. 선인장 열매인 백년초 3천 원 어치, 단감 2천 원 어치만을 팔았을 뿐이다.

하루에 잘 될 땐 12만 원 정도, 안될 땐 7만 원 정도 번다는 서씨는 물건 값을 제외하면 요즘 남는 돈이 없다. 오늘은 오전 6시에 나왔는데 오후 3시까지 3만 원도 못했다.국민연금은 형편이 안돼 중단했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노후보장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었다.

△동네 상인이 살아야 경기가 삽니다.

125cc 오토바이에 빨간색 페인트로 칠한 철제 리어카를 매단 최첨단(?) 노점상 안형빈(40·서구 평리동)씨. 트럭보다는 작아 시장 안으로 진입하기 편하고 기동력이 우수해 구청 단속도 이리저리 피할 수 있는 이런 오토바이상은 약 3년 전부터 등장했다.

"처음엔 오토바이 노점상도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100대가 넘다보니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얘기 아닙니까?"오늘은 쪽파, 부추를 리어카에 실었다. 품목은 그때 그때 다르다. 그 날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것을 구입해서 그 날 모조리 파는 것이 안씨의 원칙.

"500원짜리 하나에 벌벌 떠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노점도 매일매일 늘어나요. 정말 힘들어요."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노점상도 인근 가게와 중복 상품은 피해.

서구 평리동 서구청 맞은 편에서 18년째 자리를 지키며 '추억의 국화빵'을 팔고 있는 도광현(44·서구 평리동)씨는 부인도 다른 곳에서 같은 노점을 한다.

"노점을 할려면 우선 자리를 잡을 인근에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눈여겨 보고 민원이 생기지 않는 메뉴를 골라야 합니다. 갈수록 인심이 각박해져서 가게를 하는 상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끝장입니다. 구청에 전화 한 통화만 걸면 우리 노점은 접어야 하니까요."

"IMF 전만 해도 길게 늘어선 손님들 때문에 장사에 흥이 났죠. 토·일요일만 장사해도 먹고 살만 했는데 지금은 주5일 근무제 때문에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렇다고 딴 일도 없고…." 올 여름에는 판을 접고 노동일을 하려 공사판 반장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딴 생각 품지 말고 국화빵이나 팔라고 했단다.

△30년 만에 최악의 경기.

대구 중구 동산병원 앞에서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봉자(59·여·달서구 상인동)씨는 군밤, 군고구마로 3형제 모두 대학공부까지 시켰다. 큰 아들은 여수의 한 대학 교수가 됐고 둘째는 안경상, 셋째는 대기업 사원이 됐다. 하지만 쏠쏠하던 재미도 이젠 끝인 것 같다고 했다.

"몇년 전만 해도 군밤 봉투에 담아주는대로 가져가고, 보태쓰라며 잔돈도 안받는 손님이 적잖았는데 요즘은 그런 인심이 없어요. 망설이다 1천 원 어치 사면서 값을 깎고, 마음 상하는 경우가 하루에도 몇 번입니다. 30년을 장사했지만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입니다." 예전에 하루 20만 원 이상이던 매상이 올해는 4만 원도 안된다.

사진:경기가 살아난다고들 하지만 한참을 망설이다 1천 원 어치 사가면서 값을 깎는 서민들이 많다. 노점상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아직도 한겨울이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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