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민들레는 여하튼 노랗게 웃는다.

내가 사는 이 도시, 동네 골목길을 일삼아

ㅁ자로 한 바퀴 돌아봤는데, 잔뜩 그늘진 데서도

반짝! 긴 고민 끝에 반짝, 반짝 맺힌 듯이 여럿

민들레는 여하튼 또렷하게 웃는다.

(중략)

밟히지 않고, 용케 피어나 야무진 것들

민들레는 여하튼 책임지고 웃는다.

오십 년 전만 해도 야산 구릉이었던 이곳

만촌동, 그 별빛처럼 원주민처럼 이쁜 촌티처럼

민들레는 여하튼 본시대로 웃는다.

인도블록과 블록 사이, 인도블록과 담장 사이,

담장 금 간 데거나 길바닥 파진 데,

민들레는 여하튼 틈만 있으면 웃는다.

낡은 주택가,

구석자리에, 끝끝내 붙박인 '기쁘다'는 말,

민들레는 여하튼 불멸인 듯 웃는다.

문인수 '밝은 구석'

'민들레는 여하튼 웃는다'가 여섯 번이나 나온 시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던 노란 민들레를 실제보다 더 노랗게, 더 환하게 우리에게 돌려줘 기억이 선연한 작품입니다.

이런 것이 시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예사 민들레가 아닙니다.

긴 고민 끝에 반짝, 하고 또렷하게 웃는 꽃, 책임지고 웃는 꽃이 민들레입니다.

그만큼 확실한 모양을 갖추고 구석진 자리에 붙박인 채 불멸인 듯 웃고 있는 민들레는 어쩜 시인의 당당한 시의 모습, 철학이거나 자화상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세상이 전면 암흑일 수는 없다.

슬픔이 그러하듯 기쁨 또한 끝끝내 인간의 것이다.

농사에 쓸 종자 같은 것, 그런 '밝은 구석'이 소중하다"고. 박정남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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