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웰빙과 한방-화병

화병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병명이다. 화가 나는 일을 당하고도 이를 잘 풀지 못했을 때 가슴에 응어리, 즉 한으로 남아서 그것이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양의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히스테리, 노이로제, 우울증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또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서 나타나는 정신적 육체적 증상들도 화병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

화병은 화의 양상을 보인다는 뜻이다. 화가 날 때는 불이 위로 타오르는 것처럼 열감이 가슴이나 얼굴 머리까지 뻗치는 양상이 대표적이라서 이렇게 표현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분노했을 때 나타나는 화가 화병의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는 화병의 원인을 울체된 화, 즉 울화라고 인식하는 것이 적절하다.

한방에서는 울화를 일으키는 요인을 7가지로 나누어 칠정손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칠정이란 희(喜:기쁨), 노(怒:성남), 우(憂:근심), 사(思:생각), 비(悲:슬픔), 공(恐:두려움), 경(驚:놀람)의 7가지 마음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마음상태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인체의 생리작용, 즉 오장육부에 영향을 주어서 울화병이 생기는 것이다.

화병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언어적 표현으로 '열불 난다', '속이 탄다' 등의 말을 자주 하게 된다. 행동적인 증상으론 조금이라도 더운 곳에 있지 못하고 겨울에도 찬 것을 찾는다. 또 갑갑한 것을 싫어하고 옷을 풀어헤친다. 이불을 덮고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얼굴에 열감이 올라오고 가슴이 답답하고 가끔 통증을 느낀다. 목에 뱉어지지 않는 이물감이 있다. 입이 마르다. 숨이 자주 차고 한숨이 많다. 심장이 이유 없이 빨리, 세게 뛴다. 쉽게 피로해진다. 식욕이 없고 소화 불량이 많다. 설사나 변비가 교대로 이어진다. 두통, 생리불순이 생긴다. 그리고 쉽게 화가 나거나 불안하고 초조하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화병의 대부분은 오랜 세월 동안에 형성된 것이므로 증상이 나타날 때에는 이미 병이 아주 완고하게 자리잡은 경우가 많다. 억울한 것 자체를 억누르고 체념하면서 살아오다 어느 순간부터 살아온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면서 증상이 시작된다.

화병은 개인의 성격, 체질,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 능력에 따라 고혈압, 심장질환 등 순환기계, 두통, 불면, 불안과 초조 등 신경계, 호흡기계, 소화기계 등 다양한 증세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화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화를 내게 된 동기, 원인 또는 대상을 찾아서 적절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막힌 기운을 풀어주기 위해서 개울, 행기, 청열, 안심의 효능이 있는 약물을 투여한다. 이와 함께 환자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침을 놓기도 한다.

웰빙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웰빙은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의 조화로운 균형이다. 문제는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웰빙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웰빙은 우리말로 '참살이'라고 부른다. 화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일은 신체와 정신의 적절한 조화를 찾는 참살이를 이루려는 노력과 같다.

윤태원(대구시한의사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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