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게 아닌데. 돼지고기가 아닌데. 지금 제철이라는 주꾸미를 사러 갔었어야 했는데…. 요즘 축축 늘어지는 것이 꼼짝하기 싫고 왜 이리 피곤한지 모르겠네.'
입술은 온통 부풀어 올랐고 연신 하품을 해대니 남들이 보면 정말 뭔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정말 왜 이러지? 나이 탓인가? 봄과 함께 우리 곁으로 오는 것 중 하나가 '춘곤증'이 아닐까? 내가 요즘 '중증 춘곤증'을 앓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 미장원 잡지에서 본 냉이 오징어 볶음을 보는 순간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잔털까지 다 손실해서 주신 냉이 생각이 났고 오징어 대신 주꾸미로 나만의 특별한 냉이 요리를 해먹으리라 마음을 먹었건만.
"나생이는 뿌리의 잔털이 붙어 있으면 질겨서 먹기 힘드니 다 떼어내거라."
"귀찮아요, 어머니. 그냥 먹을래요."
"무에 그리 귀찮아?"
"그냥요. 그냥 먹어도 괜찮잖아요?"
이른 봄볕을 받으며 시골 집 마당에서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귀찮다고 그냥 먹겠다는 철딱서니 없는 막내 며느리를 위해 냉이의 잔털을 일일이 다듬어 주셨다. 어머니 생신이라 친정에 다니러 온 시누이도 옆에서 열심히 거들건만 정작 냉이 주인(?)인 나는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잔소리까지? 난 정말 간 큰 며느리, 간 큰 올케였다. "어머니 다듬은 게 훨씬 깨끗해요. 형님도 이렇게 깔끔하게 해주세요." 평소 많이 예뻐해 주시는 것만 믿고서 말이다. 두 분이 깨끗하게 손질해준 냉이라 더 특별해 국도 끓여 먹고 된장에도 넣어 먹으며 좋아하는 주꾸미와 같이 볶음을 꼭 해먹고 싶었는데 낮잠에 취해 할 수 없이 냉장고에 있던 돼지고기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만 했다. 하지만, 냉이를 넣은 볶음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그 맛에 취해 욕심을 내어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저녁 내내 물병을 안고 살며 고생을.
냉이는 단백질 함량이 매우 많고 칼슘과 철분도 많은, 춘곤증을 없애주고 입맛을 돋우는 봄나물이다. 오징어든 주꾸미든 좋아하는 것과 볶음을 해 먹으면서 크게 외쳐보자. '춘곤증, 썩 물러가라. 냉이가 입안으로 들어갑신다.'
칼럼니스트'경북여정보고 교사 rhea84@hanmail.net
◇재료=냉이 150g, 돼지고기 300g, 팽이버섯 1봉지, 양파 ½개, 풋고추 2개, 붉은 고추 1개, 생강술(또는 청주) 1큰술, 후추 약간, 양념고추장(고추장 3큰술, 고춧가루 1큰술, 간장 2작은술, 물엿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통깨 1작은술, 다진 마늘 1큰술)
◇만들기=①돼지고기는 한입 크기로 썬 뒤 생강술과 후추에 버무려둔다. ②냉이는 뿌리의 잔털을 제거하고 다듬은 후 깨끗이 씻은 뒤 물기를 빼둔다. 너무 큰 것은 반으로 잘라준다. ③팽이버섯은 밑동을 자르고 씻어 물기를 빼둔다. ④양파는 채치고, 고추는 어슷하게 썬 뒤 씨는 털어낸다. ⑤준비한 재료로 양념고추장을 만든다. ⑥양념고추장에 팽이버섯을 제외한 재료를 넣어 버무린다. ⑦달구어진 팬에 ⑥의 재료를 넣고 볶다가 거의 다 익을 즈음 팽이버섯을 넣어준다. 양념이 배도록 약한 불에서 팬의 뚜껑을 닫은 상태에서 볶다가 팽이버섯을 넣은 뒤에는 센 불에서 볶아 국물이 거의 줄어들면 접시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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