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50대 남자가 보행 중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환자는 의식이 없는데다 대광반사(light reflex)가 소실됐으며, 반신 마비의 소견을 보였다.
의사는 뇌 손상을 의심하고 뇌 CT(전산화단층촬영)를 통해 '경막외 혈종'을 확인하고 응급 혈종제거술을 했다.
수술 후 환자는 인공호흡기에 의해 호흡이 가능한 정도였다.
의사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한 가족들에게 수술 경위를 설명하고 수술에 대한 사후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다음날 환자의 가족들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퇴원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계속적인 치료에 의해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퇴원을 만류했지만 가족들은 이를 듣지 않았다.
의사는 부득이 퇴원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귀가서약서를 가족들로부터 받고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리고 가족들의 요청으로 퇴원 후 환자의 집까지 따라가서 환자에게 설치된 인공호흡기를 떼 냈다.
잠시 후 환자는 사망했다.
검찰은 소생이 가능한 환자를 사망할 줄 알면서 퇴원시키고 인공호흡기를 떼 낸 의사의 행위는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판단, 의사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1심법원은 살인죄의 유죄판결을, 2심법원은 살인방조죄의 유죄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의사의 진료와 관련해 의사에게 살인에 관한 형사책임을 물은 첫 사례가 됐다.
법원은 의사가 퇴원하지 말라는 의학적인 충고를 했음에도 환자가 충고에 반해 퇴원을 요구한 경우 의사는 퇴원으로 인한 악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당시 의료계는 의사가 살인죄로 기소되고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초유의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였고 법조계도 판결내용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환자가 소생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의 안락사와는 다소 다른 점이 있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안락사에 관한 학문적 논의가 격렬히 전개됐다.
최근 미국의 한 주법원이 15년 동안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한 여성의 안락사를 허용한 사건에 대해 미 연방의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에 대해 연방의회가 가정 내에 혹은 사법부의 판단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비록 식물인간 상태이기는 하지만 인간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미 의회의 노력은 인간존엄을 헌법이념으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규옥(변호사·법의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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