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대의 소수자 운동

윤수종 외 지음/이학사 펴냄

아무리 한 민족, 한 나라를 외쳐도 이 땅에는 분명 섞이길 거부당하는 외로운 섬 같은 사람들이 있다. 민주화 물결이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도 그랬고 모든 국민이 하나가 돼 붉은 물결을 일으켰던 월드컵 대회 때도 그랬다.

이 땅을 휩쓸고 지나갔던 계급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에 묻혀 목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던 우리 시대의 '섬'들은 이제야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사회의 '부끄럽고 이물스러운 존재'에서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수십 년 그들만의 지난한 투쟁과 연대가 있었다. '우리 시대의 소수자 운동'은 우리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글들을 편집한 책이다. 소수자에는 성매매여성, 이주노동자, 레즈비언, 장애여성, 수형자, 넝마공동체, 병역거부운동자 등이 포함된다.

소수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소수자는 표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에 입각해 표준적인 근대 인간상은 바로 백인-남성-어른-이성애자-본토박이-건강인-지성인-표준어를 쓰는 사람으로 표상된다. 따라서 유색인-여성-어린이-동성애자-이주민-환자-무지렁이-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배제되고 권력에 의해 억압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 글들은 소수자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면서 이 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소수자 운동의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최근 성매매 특별법으로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에 대해 각 단체별로 입장이 갈라졌다.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라는 보편적인 대립틀을 깨고 이례적으로 여러 목소리들이 쏟아져나왔다. 이런 편견들에 맞서 성매매 여성들도 10년 이상 조직을 만들고 싸워왔다. 심지어 가족들에게조차 배척당하던 그들은 대안적인 삶을 위해 쉼터와 두레방, 새움터의 허브사업 등을 진행하는 한편 적극적인 여성운동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수자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미 수적으로 적지 않은 데다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심각한 임금 체불, 산업재해, 폭행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 사회의 소수자들이다. 1993년 국내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의 네트워크 형성이 시도된 이후 이주노동자 운동의 역사는 고작 13년에 불과하다. 저자는 앞으로 이주노동자 운동이 정착되기 위해선 자체 조직을 운영해 자립의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넝마주이 공동체도 소개하고 있다. 헌 종이, 깨진 병 등을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넝마주이들은 1986년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구성원 모두에게 동등하고 평등한 참정권을 준다'는 이념 하에 넝마공동체가 만들어졌다. 그 후 지금까지 시유지를 점거하여 공동생활을 해오고 있는 넝마공동체 성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넝마 공동체의 노력은 자율적인 코뮌적 실험이 아닐까"하고 결론짓는다.

소수자운동은 표준화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및 집단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자율성을 지키면서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 일정한 공간을 확보해 나가는 운동이다. 기존의 지배적 생활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실험한다는 점에서 소수자운동의 발전방향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소수자운동에 있어 주도적 이념의 등장은 권력화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주도적 이념이 없으면서도 각자 처지에 맞는 자율성을 지닌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때 지배권력의 개입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자이크처럼 갖가지 색과 모양을 갖춘 사람들이 각자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권력과 편견에 맞서고 이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지지를 아끼지 않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최세정기자 beacon@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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