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관념론(觀念論) 철학을 대표하는 성리학(性理學)의 거봉인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은 중국의 학문과 조선의 역대 정주학자들의 사상을 계승해 자신의 독창적인 관념론 철학 체계를 세운 건 널리 알려져 있는 바다. 그의 이론들은 조선의 사상을 지탱하는데 큰 힘이 됐을 뿐 아니라 말년에 정치를 떠나 자연에 묻혀 지내며 교육에 힘씀으로써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평생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은 학자관료여서 날로 칭송이 높아지고 있다.
◇ 퇴계의 생애나 학문에 대해 거듭 떠올리지 않고 문학관만 짚어보더라도 칭송은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는 자연에서 도의를 즐거워하고 심성을 기르는 길을 택했으며, 이러한 사유의 소산들이 바로 시(詩)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즐거움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도의의 근본을 체득한 감격으로 이해했으며, 그 기록들이 문학이었다고 한다.
◇ 퇴계의 한시(漢詩) 80여 수가 새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의 글을 망라됐다는 '퇴계 선생 문집'(1600년) '퇴계 선생 전서'(1869년) 등에 실리지 않은 미발굴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 한시들은 도산서원 서고 광명실과 퇴계 종택 상계 광명실에 소장돼온 '퇴계 선생 문집' 초본(草本)을 포함한 고문헌'고문서 등에서 450여 년 간 묻혀 있었다는 얘기다.
◇ 이번 발굴 시들은 '퇴계 선생 문집' 초본에 14수가 들어 있었고, 나머지는 낱장으로 보간도 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퇴계학연구원 정석태 수석연구원에 따르면, '퇴계 선생 문집'을 만들 때나 그 이후 추보편을 엮을 때 편지와 시, 다른 글들이 섞여 있는 자료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탓에 '시권(詩卷)'에 옮겨지지 않은 경우로 보여지고 있다. 이 자료들은 지금 안동의 국학연구원이 위탁 관리 중이라고 한다.
◇ 지금까지 전해오는 퇴계의 시는 국문시가 '도산십이곡'을 포함해 모두 2천255수로 방대한 규모다. 특히 이번 발굴에는 한시 외에도 퇴계가 벗이나 제자, 가족과 친척에게 보낸 편지들도 많이 나왔다니 재조명의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퇴계는 한시와 시조가 성정(性情)을 기르는 구실을 하며, 문학은 도학(道學)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문학관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 발굴된 작품들에 큰 기대를 건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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