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황님이 남기신 교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선종은 21세기 우리 인류에게 어떤 가르침과 교훈을 남겼을까.

그분이 무엇을 보여주고 떠나셨기에 이토록 전 세계인들이 종파(宗派)와 이념과 사상을 떠나 한마음으로 애도하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을까.

빌 게이츠처럼 재산을 모아두지도 않았고 부시나 푸틴처럼 권력과 군대를 거느리지도 않았음에도 그들보다 더 많은 사랑과 존경과 믿음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분이 행동으로 보여주신 화해와 용서를 통한 평화의 가르침 때문이 아닐까.

'가톨릭의 의무가 평화를 가르치는 것'이라 하신 말씀대로 평화와 행복은 재산이나 권력'군대가 아닌 용서를 통한 화해에서 얻어진다는 진리를 실천으로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이리라.

역대 교황으로서 최초로 이슬람 사원을 찾아 십자군 시대의 가톨릭의 과오와 과거사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중세 종교재판의 부분적 잘못을 거짓없이 인정함으로써 그분이 일생동안 수만 번도 더 외우셨을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기도를 세계인의 가슴 속에 심어주신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 그분이 이슬람과의 화해와 평화를 끝내 외면하고 용서의 발길을 가지 않으시고 십자군 같은 과거사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말로만 화해와 용서와 평화를 외치고 기도했다면 세계인의 눈물이 이처럼 뜨겁게 흐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 당신께서는 평화와 화해의 용서가 가득 찬 천국으로 들어가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땅 위에 남아 있는 우리들 중에는 아직도 그분의 천국 승천은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나에겐 정말 천국이 있을까'라는 의심에 빠진 채 용서와 화해와 평화에 인색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교황님의 선종을 애도하며 용서와 평화의 삶, 그리고 천국의 존재와 믿음을 생각해보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은 결국 믿음의 차이일 뿐이지만 있다고 믿고 사는 삶과 없다고 믿고 사는 삶의 차이 또한 엄청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있다고 믿으며 사는 삶은 '행동하는 교황'의 모습을 닮은 삶을 살 수 있고, 없다고 믿으며 사는 삶은 가까운 일본 극우파 지도자들의 삶 같은 어리석은 삶이다.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는 논란에 대한 물고기의 이런 우화가 있다고 한다.

물속의 고기 두 마리가 낚시꾼이 내린 바늘 끝의 지렁이를 보면서 서로 다르게 주장했다. 지혜로운 한 마리가 말한다.

'지렁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있고 바늘 위에는 낚싯줄이 매여있고 줄 위에는 낚싯대가 달렸으며 낚싯대 끝에는 낚시꾼이 손을 잡고 있다. 지렁이를 먹으면 잡아 먹힌다.'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 이렇게 말했다.

'물 위에 낚시꾼이 있다는 걸 누가 봤나. 이제껏 어떤 물고기도 지렁이 먹다가 끌려가서 프라이팬에 올려져 굽혀 본 뒤에 물속으로 돌아와 지렁이끝에 낚시꾼이 있다고 말해준 녀석은 없었잖아?' 그리고는 지렁이를 덥썩 물어 버렸다는 얘기다.

죽어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갔다 돌아온 사람은 아직 없다. 그러나 용서와 평화의 삶을 사는 사람은 낚시꾼의 존재를 믿는 물고기와 같고, 화해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지렁이를 문 물고기와 같다. 우리는 어느 쪽 물고기인가. 애도의 슬픔을 잠시 접고 교황님의 선종이 남기신 용서와 평화의 교훈을 세상살이 속으로 끌어와 생각해보자.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이신 교황(敎皇)님의 존칭과 비슷하게 저네끼리 지도자 이름에 황(皇)자를 붙인 일본 '천황'의 경우 2차대전 전범의 우두머리격인 히로히토 천황이 죽었을때 전세계인이 이번처럼 애도했던가를 기억해보자. 전연 아니었다.

1억 남짓한 일본인들만 가슴 치며 울었지 황(皇)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한 세계인은 없었다.

그에게는 화해나 용서, 평화 같은 가치있는 인류의 이상과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아직도 용서와 화해를 외면한다. 핍박받은 이웃나라들은 오히려 용서하고 새로운 평화를 구해나가는데도 거꾸로 그들은 과거의 과오를 변명할 뿐 진실된 사과를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용서와 화해, 평화 대신 과오를 감춘 거짓과 왜곡역사를 이어주고 가르치고 있다.

60년 전 프라이팬에 올려져 보고서도 지옥 천국을 모른다 했던 지렁이 욕심에만 눈 어두운 물고기와 같다. 그러고 보면 일본 천황 추종자뿐 아니라 우리네 정치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과거사에 대해 주체세력은 용서를 구한 뒤 화해를 찾고 과거사의 피해세력은 용서를 해준 뒤 화해를 찾는다면 평화 속의 힘찬 진군만 있을 것이다.

그 길만이 대한민국의 국운을 융성시키는 길이요, 독도 같은 내 영토를 지키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지혜일 것이다. 교황님의 선종에서 우리는 그런 용서의 교훈과 평화의 메시지 하나라도 제대로 얻어내보자. 다시 한번 교황님이 하느님의 성총으로 천국낙원의 문에 드시기를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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