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불 피해 지역 전쟁터 방불

낙산사까지 산불 번져..."죽는 줄 알았어"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피해지역은 한마디로 폭격을 맞은 전쟁터 그대로 였다.

4일 밤 양양군 양양읍 화일리와 강현면 물갑리 경계지점에 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해안가 쪽으로 번졌다.

산불이 발화지점인 화일리와 물갑리 경계지점에서 사교리와 금풍리를 거쳐 사천리, 그리고 낙산해수욕장까지 휩쓰는 데는 6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양양산불이 최초로 목격된 것은 4일 밤 50분께.

2차선 도로 옆에서 불과 5m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 야산에 소규모의 불이 붙은것을 본 행인의 신고가 접수되자마자 강풍예보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던 양양군청 전문 산불진화대원들과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하지만 초속 25m 안팎의 강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순식간에 세력이 커진 산불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해안가 쪽과 포월농공단지방향으로 내달렸다.

특히 바람의 방향을 탄 해안가 쪽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매캐한 연기와 넘실대는 불꽃, 도깨비불 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불똥.

마을을 하나하나 쓸어 삼키는 사이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는 잇따른 대피령이 내려졌다.

밤 하늘의 정적을 깨는 사이렌과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마을 이장의 다급한목소리는 전쟁 때 공습상황을 연상케 했다.

집을 뛰쳐나온 주민들은 일단 가까운 마을회관으로 몸을 피했으나 마을회관 역시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고 보다 안전한 양양읍내로 다시 대피해야 했다.

평생을 살아온 집이 산불에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본 사천리의 한 할머니는 끝내울음을 터뜨렸다.

"저걸 어떻게 해, 저걸 어떻게 해..." 하지만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몸만이라도 빠져 나오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사천리 마을 최선모(51) 이장은 "날이라도 빨리 밝았으면 헬기라도 뜰게 아니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결국 화마는 마을을 삼키고 말았다.

산불발생 6시간이 가까워져 오는 오전 5시30분.

먼동이 터오면서 눈에 들어오는 산불피해 지역의 상황은 밤과는 사뭇 달랐다.

불에 탄 가옥에서는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마당에는 앙상한 뼈대만 남은농기구가 나뒹굴고 있었다.

특히 피해가 심한 사천리 지역은 마을이 폭격을 맞은 것과 같았다.

마을주변 논밭에는 미쳐 챙기지 못한 가재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주변에는 우리를 빠져 나온 소 몇마리가 놀란 듯 커다란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평생 이런 산불은 처음 봤다"는 관광객 이민수(35.서울시 노원구)씨는 "놀러왔던 낙산해수욕장을 빠져 나가기 위해 5일 아침 연기가 자욱한 도로를 운행하던 도중 갑자기 길옆에서 불길이 치솟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그 자리에서 죽는줄 알았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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