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둥바둥'살아봤자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사. 그래서 흙으로 만든 집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다.
고령군 덕곡리에 위치한 선승호씨의 집은 주인이 직접 나무 기둥을 세우고 황토로 벽을 마감한 흙집이다. 밥 때가 되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황토집. 그래서 편안하다. 너무 편안해서일까. 이곳에 들면 세상만사가 귀찮아 진다.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짓다보니 울퉁불퉁 못난 집이다. 설계도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집을 짓는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갈라지고 불룩해진 벽면, 나무기둥을 이리저리 옮긴 흔적자체가 또 다른 편안함이다.
주인은 단지 가야산의 멋진 풍광을 갖기 위해 이곳에 돌과 흙으로 된 언덕을 만들고 그 위에 흙집을 지었다고 했다. 워낙 특이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거실, 화장실, 서재, 부엌, 안방, 드레스룸이 나란히 배열된 일자형 구조다. 예쁜 모양보다는 편하게 살기 위해 지었단다.
나무가 주는 정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직접 보고 만지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드러냈다. 통나무 기둥과 ,보, 서까래 등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거실은 통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다듬고 잘라내어 황토와 함께 벽체를 만들었다. 미장을 하지 않아 황토가 쩍쩍 갈라져 있고 그 틈사이로 볏집이 삐져 나와 있다.
황토집 치곤 창이 큰 편인데 하중을 분산시켜주는 통나무 때문이다. 멀리 가야산을 담고 있는 전면창. 그곳에 서면 그야말로 12폭 병풍이 펼쳐진다. 지붕은 볏집을 꼬듯 소나무로 얼기설기 모양을 냈다. 소나무는 지리산 출신으로 처서가 지난 소나무를 사용하는 등 제법 세심한 신경을 썼다.
거실 중앙에는 굽고 못생긴 나무가 주인처럼 버티고 있다. 굳이 없어도 되지만 나무를 만지고 느끼고 싶은 주인의 마음이다. 6m에 달하는 거구로 천하장사 최홍만처럼 육중한 무게를 번쩍 들고 있다. 바닥에는 황토와 비슷한 색깔의 나무를 깔아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서구식 벽난로가 아닌 전통 아궁이를 마련해 불을 때게 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불길이 잘 빠져나간다고 한다. 아궁이는 보조난방 기능뿐 아니라 추운 겨울이나 여름 장마철 고기를 구워 먹는데 안성맞춤이다.
이걸로 끝인가' 싶더니 거실 한켠에 있는 한옥식 쪽문을 열고 들어서니 숨겨진 '아방궁'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자형으로 길게 늘어진 별채는 부인만의 공간이다.
모든 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거실과 완벽히 차단된 안방. 숨소리 마저 들릴 정도로 방음이 잘된다. 서가래를 노출시키고 지리산 소나무로 마감했다.
특히 화장실에서는 잘 가꾸어진 텃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변비 걱정 끝. 마당은 공사중이다. 마당을 가꾼지 3년이 넘었지만 앞으로 서너곱절의 시간이 흘러야 완성될 예정이란다.
신라시대의 안압지처럼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연못, 돌, 나무, 장독대를 교묘히 배치, 세월이 흐를수록 정원이 깊어지고 은밀해진다.
선비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곳곳에 오죽(검은 대나무)과 설중매를 심었다. 감나무그늘 아래의 장독대가 올망졸망하다. 그 옆에 친구처럼 자리한 돌탑. 능수화가 소원을 빌 듯 돌탑을 휘감고 있다.
주인은 이 탑을 쌓다 7번이나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단다. 공든 탑이 무너진 셈. 하지만 기다림도 배웠다고 한다. 돌도 살아 있다'. 따라서 스스로 자리잡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
마당을 빙돌아 물길을 만들었다. 4km밖에서 끌어 왔지만 사시사철 끊어지지 않는다. 제멋대로이지만 나름의 멋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집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주인의 여유로운 모습이 무척 잘 어울리는 집이다.
사진=박순국위원 tokyo@imaeil.com
★정용의 500자평
벽돌 같은 언어로 시(詩)를 쓰지 말고 돌맹이 같은 언어로 시를 쓰라는 말이 있다. 이른 뜻으로 지구상에 하나 밖에 없는 집을 지어 사는 이가 있으니 선승호씨다.
그는 애초에 설계도서도 없고 마음이 가는데로 선을 그었고 유일하게 하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설계도면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계획이 없는 집이 아니다. 10년정도 황토집 등을 찾아다니며 벽두께와 삶의 공간들을 어떻게 배치 할 것인가 차곡 차곡 정리해 두었다.
정원은 몇 년을 지나야 완성된단다. 다른 사람에게 조경을 맡기면 그사람 정원이고 손수하게 되면 자기정원이 되는 것이기에 혼자 천천히 자기 것을 만들고 있단다.
일차 진행은 오죽(烏竹)과 설중매가 심어지고 피어있다. "선비가 있는 곳에는 오죽과 매화가 있어야 한다기에 나도 선비처럼 살기 위해서 입니다. 도덕, 양심, 청빈함을 갖춘 선비가 되고 싶어서…?
성자(誠者)는 천지도야(天地道也)요 성지자(誠之者)는 인지도야(人知道也)라고 했다. 성(誠), 말과 행동을 같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을 선승호씨는 실천 중이다.
가야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집터를 올려 짓고 거실에서 초등학교 교실을 볼수 있게 설계함으로써 밉지 않은 참새들이(어린이들) 아침에는 날아와 생동하는 삶을 전하고 저녁이면 숲으로 돌아가 고요함을 줄수 있어 좋단다.
흙과 나무, 어린이와 어울려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는 선승호씨의 사는 이야기는 부럽기 그지없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