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寺刹 문화재 '火災 무방비'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거의 다 타버린 강원도 양양 지역의 낙산사 화재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479호 '낙산사 동종(銅鐘)'마저 완전히 녹아내렸을 정도였다니 기가 막힌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자리한 유서 깊은 이 신라 고찰이 인재로 인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건 '문화재 보호'가 여전히 구두선(口頭禪)이라는 소리인지…. 더구나 식목일에 나무들과 함께 화마로 미증유의 피해를 입은 사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 산불은 갈수록 늘어나나 그 재앙에 대한 대응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산불 피해는 수십 년이 걸려도 회복이 어려운 데다,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산 속에 주로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게다가 우리의 문화유산 보존'관리 예산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라 사찰 문화재들은 화재에 노출돼 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 보존'관리에 따르는 가장 큰 위험은 화재다. 대부분이 목조건물이므로 불이 나면 완전히 타버릴 가능성이 크고, 전기 합선, 관리 부주의, 방화 등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해인사'법주사'화엄사'근정전 등의 주요 국보급 건축문화유산에는 물탱크를 장착한 소화시설을 갖췄놓았다지만 이번 낙산사의 경우 대형 산불엔 '불가항력'이지 않았던가.

◇ 사찰 보험 가입률도 극히 미미한 모양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국 사찰 5천여 곳 가운데 보험에 가입한 곳은 고작 32개에 불과하다. 사찰별로는 경주 불국사가 150억 원 규모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이 51억 원 규모의 석굴암이다. 하지만 이번 산불로 타버린 낙산사 경우 건축물 14개 동 중 1개 법당만 장기종합보험(보험금 최고 5억 원)에 들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무보험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다.

◇ 문화재 보호는 말로만은 안 된다. 문화유산은 선조들의 숭고한 얼이 담겼다느니, 잘 보존해 후세에 물려주는 게 우리의 책무라느니 하지만 대부분이 '말잔치'들이다. 유지에서 보수'관리에 이르는 총체적 부실이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낙산사 충격'을 계기로 문화재청이 주축이 돼 지자체와 사찰 등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하리라.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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