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패션 어패럴 밸리'…"꿈만 야무졌다"

예견된 실패

패션어패럴밸리 사업의 오늘은 예견된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패션 선진국에서조차 수십~수백 년에 걸쳐 이뤄진, 게다가 국내에서는 성공 사례가 전무한 패션어패럴밸리를 행정기관이 주도해 밀어붙인 것부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꿈만 야무졌을 뿐 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계획부터 졸속

패션어패럴밸리 조성사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초기부터 제기됐다. 당시 KDI 등 외부용역기관들은 수도권에 몰려 있는 패션업체의 인위적 대구 이전이 불가능하다며 대구시 계획의 타당성 부족을 지적했다.

입안에 관여했던 시 관계자, 섬유업계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문희갑 당시 시장의 목소리가 워낙 강해 누구도 패션어패럴밸리 사업에 대한 이견을 달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2000년 미국 컨설팅업체 '모니터 컴퍼니' 타당성 조사에서는 대구의 현실과 동떨어진 고급 디자이너 의류 집적지가 대구의 미래좌표라는 발표까지 나왔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현실이 아닌 꿈이 포장돼 쏟아졌다고 전했다.

서울, 수도권은 물론 지역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반대론자들은 밀라노의 '몬테나 폴리오네', 파리의 '포부르 생 토노레', 뉴욕의 '로데오' 등 수십~수백 년 간 이어온 문화적 토대 위에서 자연 발생한 세계적 패션거리를 공공기관이 인위적으로 조성한다는 자체가 비현실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입안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시는 고부가산업인 어패럴 육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데 반해 지역 업계는 아직 이른 얘기라고 맞붙었다.

이런 갈등구도 속에서 시가 최종적으로 내놓은 계획도 결국 졸속이었다. 2000년 수요조사 결과, 산업용지는 1천874평에 불과했지만 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9만9천671평으로 넓혀버렸고 거대 패션·유통단지를 만든다는 계획도 집어넣었다.

시 관계자는 "당초 계획을 보면 패션어패럴밸리 핵심축인 패션스트리트의 가로폭이 50m에 이른다"며 "한쪽 상가에서 건너편 상가의 판매 상품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가로폭이 넓은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사후 대처 엉망

계획에 허점이 많다보니 패션어패럴밸리는 6년여 동안 제자리만 맴돌았다. 시는 패션어패럴밸리에 대한 중·장기 추진일정을 내세우지 못하고 허송세월했다. 결국 중앙정부는 2단계 밀라노프로젝트에서 패션산업에 대한 국비 지원을 한 푼도 해주지 않았다.

시의 막연한 계획만 믿고 기다린 지역 업계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봉제조합 관계자는 "밸리 조성이 되면 한 곳에서 우수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고 해외바이어들에게 했던 말들이 거짓말이 됐다"라고 했다.

패션기능대학 박수현(패션소재 디자인과) 교수는 "어패럴밸리로 학교를 이전한다는 시 방침 때문에 벌써 3년째 학교에 한 푼도 투자를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조해녕 시장이 들어온 이후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시에 따르면 올 초 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 존슨앤파트너스(JPDC)와 맺은 주거단지 개발계약도 물거품 위기에 놓여 있다. 이 회사가 2월 말까지로 약속한 계약금을 넣지 않아 시는 사실상 주거단지사업에 대해서는 계약해지 상태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는 지난달 감사원의 지적이 있고 난 뒤에서야 계획 전면수정 방침을 굳혔다. 정책 평가기관들의 무수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하면 된다'로 일관하며 시간을 보냈던 시가 6년이란 세월을 버리고서야 태도를 바꾼 셈이다.

관련업계 적극성 부족이 패션어패럴밸리의 상처를 키우는데 한몫했다는 의견도 많다. 관련 업계는 6년 동안 단 한번도 패션어패럴밸리 조속 추진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투자도 하지 않았다.

한국패션센터(FCK) 이동근 본부장은 "민간주도 사업인 패션어패럴밸리가 지지부진했던 것은 업계들의 자구노력이 부족한 탓도 적잖다"며 "업계가 먼저 대안을 제시하고 적극적인 투자의사를 내비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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