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직원은 투숙객이 오후 2시가 지나도록 퇴실을 하지 않고 전화조차 받지 않아 비상키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젯밤 중년 남자랑 같이 투숙했던 미모의 젊은 여자가 침대 위에서 전라 상태로 숨져 있었다.
자신의 브래지어로 목이 졸려 살해된 것이다.
경찰은 함께 투숙했던 중년 남자의 신원을 확인했고, 유력한 용의자로 조사를 했다.
그러나 남자의 진술에 따르면 자신은 그 전날 오전부터 조금 알고 지내던 그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만났다고 한다.
저녁을 같이 먹으며 술도 마셨다.
밤 10시쯤 호텔에 함께 들어갔으나 여자가 샤워를 하는 동안 생각이 바뀌어 11시쯤 호텔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 남자의 차량이 호텔 주차장을 나간 시각과 자신의 아파트에 도착한 시각에 대한 아파트 경비원의 진술이 일치했다.
부검이 실시됐다.
피살된 여인의 사망시각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사망시각이 전날 밤 11시 전인가 아니면 그 이후일까.' 피살자의 사망시각은 범인의 알리바이 성립에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피살자를 면밀히 조사하던 중 그녀의 손목시계가 3시20분에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검을 맡았던 필자는 곧바로 시계를 풀어 형사에게 건너 주면서 "이 손목시계의 사망 원인이 더욱 중요하다.
전문가에게 시계가 왜 멈추게 됐는지 조사해달라"고 했다.
예측대로 시계는 충격에 의해 작은 부품 하나가 부서지면서 멈췄다고 한다.
작은 단서 하나가 그 중년 남자를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게 해 줬다.
물론 경찰은 중년 남자가 호텔을 나간 후 그 여자가 전화로 어떤 남자를 불러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진범을 검거했다.
사망시각 추정은 법의학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부정확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다.
지난 수년간 법의학자들은 많은 실험을 거쳐 사망시각 추정 방법을 발전시켜 왔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사망시각 추정은 체온의 떨어짐, 시체경직, 시반, 위 내용물의 소화정도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경우에는 부패상태, 파리 등 시체 내 곤충의 성장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부수적인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요소가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 부엌의 음식물, 현관에 쌓인 신문, 수거되지 않은 우편물, 불이 켜져 있는지의 여부, 잠자리의 상태, 식사 중 또는 설거지의 여부, 펼쳐져 있는 신문의 TV 스케줄, 입고 있는 옷, 주머니 속의 영수증이나 신문, 최후로 목격된 시간, 몸에 상처가 있는 경우 치유정도 등 현장 상황을 두루 살펴야 한다.
하지만 사망시각 추정은 어디까지나 수사의 보조적인 판단을 위한 것이다.
사망시각만으로 무고한 피의자를 만드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
채종민(경북대 의과대 법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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