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와 카이사르를 능가하는 대군주인가, 오만하게 왕들의 목을 짓밟은 파괴적인 야만인인가? 볼테르는 자신의 희곡 '중국의 고아'에서 칭기스칸을 '오만하게, 왕들의 목을 짓밟은 파괴적인 압제자'로 묘사했다. 반면 네루는 그의 저서 '세계사 편력'에서 '알렉산더와 카이사르도 칭기스칸 앞에서는 작아보인다' 고 썼다. 좁혀질 수 없는 동서양의 인식차는 이렇듯 컸다. 동양과 서양은 언제나 각기 자신의 거울로만 칭기스칸을 비춰볼 뿐이었다.
이 책은 서양인이 쓴 동양적 시각에서의 글이다. 한 문화인류학자의 집념은 이 같은 몽골왕가의 비밀 서책 '몽골비사'를 통해 베일에 가려 있던 칭기스칸의 진실을 벗기고 동서양의 칭기스칸을 보는 시각차를 해소하고 있다.
저자 잭 웨더포드(미국 미네소타 매칼레스터대 인류학과) 교수는 이 저서를 위해 8년 동안 몽고땅을 누비고 다녔다. 1998년 서구학자로는 처음으로 칭기스칸의 고향 부르칸 칼둔을 방문하면서 그의 연구는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칭기스칸 사후 800년동안 방문이 금지되었던 대금구(大禁區)에 대한 현지 답사를 통해 퍼즐을 풀듯 알려지지 않은 몽골제국의 조각을 맞춰나간다. 이를 통해 초기 몽골족이 유목보다는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그러한 환경은 칭기스칸의 부족 운영과 전쟁전술에 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밝혀 나간다.
베이징의 자금성에서부터 터키 이스탄불의 토프카피 궁전에 이르는 길을 다니며 고고학적 발굴 현장과 도서관을 찾아보고 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자는 서양사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몽골제국이 13세기에 이미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로 통합했고 이를 통해 근대 세계체제로 가는 길을 200년 먼저 뚫었다고 주장한다. 동양이 서양을 가르쳤다는 주장이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칭기스칸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들과 함께 부족에서 추방당해 쥐를 잡아먹으며 거의 짐승처럼 목숨을 연명한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그의 가족과 함께 비극을 견뎌내면서 초원지대의 엄격한 카스트 구조에 도전하는 계기가된다. 그의 용인술은 혈연적 유대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이 기준이 된다. 당시 초원사회에서는 혁명적인 발상이다. 전쟁 전술에서도 기존의 유목민 군주와는 크게 달랐다. 그는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한 후 약탈을 허용했다.
전쟁과 약탈이 동시에 이뤄지던 것이 당시 관행. 이렇게 해서 그는 조직적인 방식으로 약탈을 할 수 있었고 모든 물자를 중앙에서 통제 적당한 방식으로 분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고집했다. "나는 소를 치는 목동이나 말을 모는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우리는 똑같이 희생을 하고 똑같이 부를 나누어 갖는다. 나는 절제를 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대한 기록은 인간 칭기스칸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몽골제국은 25년이라는 짧은 기간 로마군이 400년동안 정복한 것보다 많은 땅과 사람을 정복했다. 그가 정복한 나라나 땅, 모든 것들은 역사상 다른 어떤 정복자 보다 두배 이상에 달한다. 몽골의 병사들은 태평양부터 지중해까지 모든 땅을 밟았다. 전성기 몽골제국은 2천800만 내지 3천100만㎢의 땅을 차지했다. 현대 지도에서 칭기스칸이 정복한 땅은 30개국에 이르고 인구로는 30억이 넘는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만한 넓이이자 미국, 캐나다, 중앙아메리카를 모두 합한 면적보다도 넓다. 당시 몽골부족 전체가 100만명, 군사수가 10만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가사의한 일을 칭기스칸은 해냈다.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택해 1부 초원의 공포정치 편에서는 어린시절과 칸들의 전쟁, 2부 몽골세계전쟁에서는 유럽원정, 3부 세계인식의 대전환에서는 몽골제국의 세계사적 역할에 대해 쓰고 있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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