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예비신부가 결혼을 앞둔 어느날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면, 치매에 걸려 사랑하는 손자를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한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사할린 징용군으로 끌려간 남편과 50년만에 재회했는데 그 남편이 다시금 사고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면….
안동에서 신세계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외과의사가 병원이라는 풍경 속에서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건져 올린 35개의 에피소드를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리더스북 펴냄)이란 책으로 엮었다.
'시골의사'라는 정겨운 필명을 가진 지은이 박경철씨는 의사로서, 아니 의사이기 때문에 목격해야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생생한 날것 그대로 보여주며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담담하게 전한다.
우리가 찾는 삶의 진정성은 삶 그 자체에 있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시골의사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네 삶의 단면들이 이렇게 깊은 울림을 주며 참을 수 없는 애잔함으로 가슴을 저릴 줄이야. 그것은 지은이가 남다른 해학과 진솔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의 인생 그 자체가 그대로 감동이 되고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지은이는 애써 군더더기 설명을 달거나 에둘러 가는 법이 없다. 어줍은 감상이나 연민에 빠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한편의 휴먼다큐멘터리를 보듯 장면 장면을 따라 갈 뿐이다. 그런데도 읽고 나면 가슴에 와닿는 그 무엇이 호흡을 가다듬게 한다. 코미디언 서경석씨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울다가 웃다가 어느새 다시 조용히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독후감을 남겼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단순한 병원 르포나 메디컬 에세이가 아닌 것이다.
"나는 내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짐으로써 누군가가 삶의 어느 지점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들을 잠시나마 함께 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내 눈에 비친 그네들의 희노애락을 한번쯤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지은이는 또 책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내'가 바로 '그네들'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한다. 막연한 동정이나 관심이 아니라, 그네들의 기쁨과 아픔을 내것처럼 여기며 진정으로 그네들과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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