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델포이 신탁소, 성 베드로 대성당 등의 신성한 건축물들은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의 강렬한 발현이 구현된 산물이다. 사람들은 절대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열망으로 신성한 건물을 만들고 그 안에 절대자와 소중한 접촉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산 모양을 투영한 피라미드에서 땅과 하늘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은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에 거주하는 침시아족의 토템 기둥에 이르기까지 표현 양식은 문화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이 책은 신성한 건축에 담긴 상징과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풍부한 사진과 도판을 곁들여 세계 전역에서 발현되는 신성(神性)이라는 주제가 건축물의 구조와 장식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중앙아메리카 도시 문명의 유서 깊은 기념비적 건축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 원주민 지역, 오세아니아의 사례 등을 통해 신성한 건축이 인류의 보편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신성한 건축이라고 하면 으레 웅장한 불교 사원이나 그리스도교 교회, 이슬람 모스크를 떠올린다. 이런 건축물들에 값지고 단단한 자재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영원을 바라는 인류의 동경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하나의 건축물에 내재하는 성스러움은 오래 가느냐 하는 영속성의 개념이 아니라 그 건축물이 구현하는 성스러움의 응축 정도에 좌우되므로 한시적인 구조물에 대한 정기적인 파괴와 재건축을 통해서도 성서러움은 표현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이세(伊勢)신궁이다. 이세신궁은 일본에서 가장 신성한 신사로 역사는 3,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8세기부터 제례가 열리면서 신궁을 포함한 건물들이 20년마다 파괴되고 정성껏 마련된 인근 터에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졌다. 새로운 신사는 복제품이 아니라 새로 창조된 것으로 간주된다. 자연을 항상 새로워지는 존재로 이해하려는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다.
성스러운 건축물의 디자인과 구조는 흔히 우주의 패턴과 구조, 정렬 상태 등을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완벽한 영역으로 간주된 하늘의 상태를 지상에 재현하려는 인류의 열망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나 인도의 바라나시가 신성한 도시로 간주되는 것은 이들 도시가 천상의 원형을 재현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가장 치밀한 우주의 모형으로는 힌두교의 만다라를 꼽을 수 있다. 우주의 구조를 나타내는 이 만다라는 일종의 명상 장치 혹은 각종 의식에 사용되는 도형이다. 힌두교와 자이나교, 불교에서 사원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만다라는 하나의 기본 설계도 역할을 하며 사원은 삼라만상의 구조를 재현하는 동시에 3차원적인 명상 장치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사원의 중앙에 성소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위로는 메루산을 상징하는 탑이 솟아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앙부에 있는 보로부두르의 불교사원이 기본 네 방위를 가진 만다라의 설계도를 따르고 있다. 영국의 스톤헨지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정렬 상태가 일식과 월식을 포함한 해와 달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하게 해준다고 믿고 있다.
신성한 건축물은 각종 의례를 통해 숭배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봉헌과 정화 의식을 통해 인성과 신성이 만나는 장소가 된다. 이러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은 희생을 통해서 구현되기도 한다. 16세기 멕시코를 침략했던 스페인 군대는 대규모 인간 제물을 바치는 아스텍 문명을 목격했다.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의 마요르 대신전에서 제관들은 제물로 바칠 인간을 태양신 우이칠로포크틀리 신전이 세워져 있는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질질 끌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멕시코 치첸이트사에 있는 '전사의 사원' 아래 제단으로 조각된 아즈텍의 차크물 인물상이 받치고 있는 편평한 접시에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심장이 담겼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기도와 춤, 행렬과 순례를 통해 숭배자들과 관계를 맺기도 한다. 하즈(Haj: 이슬람 성지순례행사) 기간 동안 수십만의 이슬람 순례자들이 메카로 물밀듯이 모여든다.
다양한 전통과 신앙체계 속에서 세워진 신성한 건축물들은 이질성뿐 아니라 연속성도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 사원은 로마 사원을 창조했고 로마 사원은 다시 돔 형식을 덧붙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바실리카 양식은 돔 형식을 물려받아서 비잔틴을 통해 모스크에 넘겨 주었으며 모스크는 이를 '알라'라는 이슬람 세계의 관념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
많은 종교에서 신성한 건축물은 죽은 사람을 위한 구원의 도구이자 환생의 수단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인간에 의해 조성된 거대한 무덤이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은 종교적인 건물이면서 왕족과 계관시인의 묘지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인도 아그라의 야무나 강가에 세워진 타지마할은 샤 자한 황제가 사랑하는 아내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위해 세운 묘지로서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이슬람 장례문화의 결정판으로 간주되고 있다. 192쪽, 2만5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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