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銅鐘 소리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정도가 산지다. 눈을 들어 어딜 봐도 산이 있다. 산 너머 산, 또 그너머로 끝없이 이어진다. 세계의 산악인들이 정복의 대상으로 삼을만한 산은 없어도 볼수록 정겹고 푸근한, 어머니 같은 산들이다. 한국미의 달인 고(故) 최순우가 이리 말했듯이.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중략) 우리 한국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가면서 순박하게 살아왔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지금의 대구 앞산도 당시 초등학교 아이들의 소풍사진 속에선 키 작은 다박솔만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집집이 나무를 많이 때던 시절이라 산의 나무를 가만둘리 없었다. 시퍼런 청솔 생가지까지 마구 베어 땔감으로 사용했고, 속칭 '깔비'(말라 떨어진 솔잎)마저 싹싹 긁어 불쏘시개로 사용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 시절의 동요 '메아리'는 헐벗은 우리 산들에 푸른 옷을 입히자는 산림녹화 메시지를 절절하게 담고 있었다.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우리 산엔 살 수 없어 갔다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메아리가 살게시리 나무를 심자"

◇지금의 우리 산들은 그야말로 울울창창하다. 등산객들이 늘상 오르내리는 산 들 이외엔 너무 빽빽해진 숲 때문에 들어서기조차 겁이 날 정도다. 깊은 산의, 후손이 적은 무덤들은 길이 끊겨버리기 일쑤다. 그 많던 민둥산들이 40여년만에 이렇도록 바뀌어지다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해마다, 그것도 식목일을 전후로 대형 산불들이 반복되면서 산과 그 산자락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올해도 강원도 양양 일대의 화마로 천년 고찰 낙산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선조 예종때 만들어진 보물 479호 동종(銅鐘)도 간 곳이 없다. 생각할수록 아깝고 원통하다. 산의 숲을, 그 속의 생물들을, 온 국민이 잘 지켜나가는 것이 또하나의 애국임을 절감케 된다. 인터넷으로나 듣는 생전의(?) 낙산사 동종 소리가 왜 이리도 애절할까.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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