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수원㈜, 美원전 설비회사 영업비밀 침해"

한수원, 신고리원전에 문제의 설비 납품 추진 '물의'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안전에 핵심적인 설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미국 회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국내 법원이 내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한수원은 불법으로 개발한 설비가 기존 설비보다 내진(耐震)능력이 크게 부족한데도 신설 원전 건설에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방법원 제6민사부(재판장 김한용)는 지난 1월 28일 미국의 원자로 설비생산회사인 IST 코낙스 뉴클리어사(IST Conax Nuclear Inc.)가 한수원과 경기도 안양시 ㈜평일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침해금지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간 원자력발전소용 전기관통구설비(EPA)에 관한 원고의 영업비밀을 제3자에게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한수원과 평일 사이의 '원자력발전소용 전기관통구설비 개발계획' 에 의해 평일이 생산한 원자력발전소용 EPA를 구입하거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이고 원고 측이 낸 가처분신청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EPA 공급 계약서에서 '소유권 표시 등에도 불구하고 구매자는 사업의 설계·건설·운영·유지 또는 라이선스 등 제한된 목적을 위해 공급자가 제공한 서류 및 정보를 재생산할 수 있고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약정한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EPA 관련 기술정보를 해당 원자력발전소가 아닌 다른 발전소에 설치될 EPA를 개발하려고 하는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까지 허용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IST)가 코낙스 디자인의 EPA를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제조·판매하고 있고 피고가 장기간에 걸쳐 원전을 건설하면서 오로지 원고로부터만 EPA를 공급받아온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피고가 EPA 구입경비 등을 절감하기 위해 EPA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평일에게 영업비밀이 기재된 설계도면 등을 제공했다면 피고는 부정한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한 것이라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대부분의 원전에 EPA를 납품해온 IST는 한수원과 평일이 원전의 건설비용절감과 설계기술의 자립도 향상을 위해 지난 99년 11월 26일부터 2002년 3월 25일까지 8억6천여만 원을 들여 IST의 설계도면 등을 이용, EPA 개발을 완료한 뒤 실시계획승인이 난 신고리원전에 납품하려고 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한수원과 평일이 개발한 EPA는 내진능력이 전체적으로 IST 설비의 2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한수원은 자신들이 개발한 EPA를 수의계약으로 신고리원전 건설에 납품토록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EPA는 원자로 콘크리트 격납벽을 통해 원자로 내·외부를 연결하는 각종 신호선과 전력선이 통과하는 밀봉장치로 원자로 내부의 방사능·고온·고압 등 평소 조건에서는 물론 지진이나 화재 및 폭발에도 그 성능이 유지돼야 하는 원전의 핵심설비이며 원전 1기당 70개 정도가 소요된다.

이 같은 판결결과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부장은 "졸속적인 원전설비 국산화 과정에서 안전성은 무시한 채 경제성만 추구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그동안 한수원이 자랑했던 국산화된 원전 부품과 설비 전반에 대한 안전성 검사가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사업기술처 이일구 과장은 "평일이 항소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변호사와 상의해 부대항소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하고 "신고리원전이 아직 정지작업 단계에 있기 때문에 아직 EPA문제로 인한 공정 차질은 없다" 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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