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여성불화가 박소현씨

"시대와 장소만 다를 뿐 불화를 그리는 것은 곧 수행입니다.

"

불화(佛畵)의 현대화에 한발 앞서고 있는 여성 불화가 박소현(48)씨. 그가 그린 불화에는 휴대전화가 등장하고 원색보다는 신세대 감각에 어울리는 파스텔톤의 색조가 많이 가미되기도 한다.

"계보나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현대적인 감각의 불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 탱화에는 신장(神將)이 있고, 신장은 악신을 물리치기 위해 칼이나 도끼, 비파, 부채 등을 든 채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게 마련.

그러나 박씨의 최근 탱화에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등장했다.

영남불교대학 관음사 법당에 걸린 탱화가 그 좋은 예. 또 신장이 입고 있는 갑옷도 기존의 중국식에서 탈피, 을지문덕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의 갑옷을 입고 있어 친근감을 더한다.

"신장과 탱화는 신성한 신앙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스님이 아닌, 그것도 여자는 감히 그릴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박씨는 백부와 고모가 출가했을 만큼 불교와의 각별한 인연이 자신을 불화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필연이었어요. 어릴 적 어른들을 따라 간 절에서 본 단청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탱화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죠." 의재 허백련 선생에게 사사하기도 한 동양화가인 그가 불화에 입문한 지도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6년 조계종 불교미술대전에 입선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탱화만 30여 점을 그렸다.

태고종 본산인 선암사와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포교당인 대구 보현사, 천태종인 포항 황해사의 탱화 등이 그의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진주 월경사의 감로탱화와 영남불교대학의 신중탱화는 그의 최근 경향인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완성한 작품이다

탱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3~7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초를 만들어 그리고, 옥양목 재질에 배접을 한 다음 초를 다시 올리고, 습기와 곰팡이를 방지하기 위한 약품처리를 해서 채색을 하고 점안을 하기에 이르기까지 손끝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작업에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화는 온몸으로 그립니다.

오체투지한 채 숨소리조차 죽이며 작은 붓끝에 혼신의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불화는 수행일 수밖에 없지요. 여자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작업입니다.

"

그러나 불화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은 마음이 호수같이 맑아진다고 한다.

가슴 한 쪽에 자리하고 있던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고통과 번뇌망상도 붓길 따라 한 점 한 점 스러진다는 것이다.

이윽고 대작이 완성되었을 때의 그 무한한 법열. 붓을 놓는 순간 그것은 이미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진 불화가 아니라고 한다.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스스로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탱화는 다른 그림을 그릴 때보다 기교와 정성이 몇 갑절이나 듭니다.

섬세한 손재주와 인내심이 없으면 그릴 수 없어요." 박씨는 더 중요한 것은 불심(佛心)이라고 한다.

그리고 싶다고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지요."

달성군 가창면 용계동 법계사 앞 소현불화연구소에서 10년째 불화에 전념하고 있는 박씨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통도사나 직지사 등 고찰을 자주 찾는다.

특히 산내 암자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맑은 바람에 마음을 씻고 돌아와 목욕재계를 한 다음에야 작업에 들어가곤 한다.

법계사 뒷산을 스치는 봄바람이나 가창댐 아래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도 그에게는 모두가 법문이다.

산사를 찾는 뭇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하면 한 치의 붓끝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남은 여생도 불화를 그리는 데 바치겠다는 박씨는 오늘도 불화삼매(佛畵三昧)에 빠져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필생의 대작을 남길 금어(金魚)를 꿈꾸며….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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