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에 농사 짓는 일을 가업으로 물려주고 싶은 부모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농촌에서 살려는 젊은이들도 잘 없겠지만. 그래도 제 아들만은 영농후계자로 키워 쌀농사를 대물림해주고 싶습니다.
"
칠곡군 기산면 영리 김종기(56)씨는 "쌀농사로 성공한 셈"이라고 자부하는 쌀농사꾼이다.
영농규모만 보아도 입이 떡 벌어진다.
아들 창수(27)씨와 단 둘이 해내는 논은 약 14만 평(700마지기). 가족단위로서는 국내 최대규모 수준.
자신의 이름을 딴 자체 브랜드 '금종쌀'로 전국의 웬만한 농사꾼이라면 그의 이름을 다 알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는 '벤츠 타는 농사꾼'이란 부러움 섞인 별명도 갖고 있다.
김씨의 농장은 칠곡군 기산면 영리들 중간에 있다.
왜관에서 성주 가는 국도 옆이다.
1천500평 규모의 널찍한 마당엔 정미소와 육묘공장, 4칸의 창고가 들어서 있다.
집안은 거실이자 사무실이다.
사무실 입구에는 '새농민 수상자 김종기·장점희'란 문패가 걸려있다.
창고 옆 한쪽에는 대형 트랙터 등 각종 농기구들이 즐비하다.
김씨를 지켜주는 분신들이다.
김씨 농장은 늘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영농상담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김씨는 견학 온 농업인들에게 "농사가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내고 열심히 해서 외국쌀을 물리쳐 봅시다"라고 격려한다.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김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입 개방도 겁나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해 했지만 요즘은 조금 걱정스런 모습이다.
틈틈이 컴퓨터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것도 군청에서 개설준비 중인 칠곡군 브랜드쌀 인터넷 쇼핑몰의 전자상거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쌀농사를 시작한 것은 99년. 6년 만에 전국 최고의 쌀농사꾼으로 성공한 셈이다.
지난달 초엔 농림부에서 선정한 '신지식 농업인'으로도 선정됐다.
김씨는 농사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고향에서 고교 졸업 후 대구로 진출, 버스·택시운전 기사와 간장공장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78년 낙향했다.
10여 년 동안 부인과 함께 참외농사와 소규모 벼농사를 지었지만 부지런한 데다 남다른 수완을 발휘해 영농기반을 다졌다.
쌀전업농으로 전환한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고령에다 일손부족으로 모두들 논농사를 기피하면서 90년 초부터 임대영농붐이 일기 시작한 것. 자연스럽게 동네농사를 떠맡았다.
영농분량이 갑작스레 9만 평으로 늘어났다.
자기 논 4천 평을 뺀 나머지는 모두 임대농으로 시작한 셈이다.
"한번 해보자"며 죽기살기로 매달린 농사는 6년 만에 규모가 배 이상 불어났다.
현재 농장주변 2km 반경에 14만 평의 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 중 김씨 소유만 8천여 평으로 불어났다.
김씨의 영농방법은 남다른 특징이 있다.
물론 대형 농기계 덕분이지만 '조기재배·조기수확', '조·중·만생종의 분산 농업'이 비결이다.
자체 육묘공장과 정미소 등 생산-수확-판매망을 갖춰 모두 직접 처리한다.
올해도 남들보다 한 달 정도 이른 지난달 24일 벼종자 파종을 했다.
오는 20일쯤에는 모내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씨 부부는 "농사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며 도시로 나간 외아들 창수씨를 설득하기 위해 엄청난 고민을 했다.
나이가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 평생 일군 들판을 고스란히 남의 손에 물려줘야 할 판이기 때문.
창수씨는 "도시에 나가 아무일이나 해도 농사짓는 것보다는 더 많이 벌 자신이 있다"며 애를 태웠고 실제로도 차량 오디오가게를 운영하면서 사업에도 소질을 보였다.
김씨는 "네가 안하겠다면 나도 농사를 때려치울란다"며 으름장도 놓고 달래기도 했다.
5년이 걸렸다.
결국, 자동차 마니아인 아들에게 "외제 차를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붙잡았다.
요즘 김씨의 농장 창고 안에는 '벤츠s400' 이 턱 버티고 있다.
전국에서 견학 온 사람들은 농장을 둘러보다가 창고 속의 벤츠를 발견하고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요즘은 창수씨가 가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한 듯하다.
"아버지가 일궈놓은 이 많은 영농재산들을 썩일 수는 없잖아요. 아들도 저 하나뿐인데…." 부쩍 성숙해진 창수씨의 모습을 보는 김씨 부부는 뿌듯하다.
창수씨가 대외활동에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새벽부터 정미소를 보살피는 등 애착을 보이고 있는 것. 곧 20대 쌀농사 전문영농인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창수씨는 수입전문회사인 BK무역 영업실장이라는 또다른 명함도 가지고 있다.
결혼을 하기위한 작전(?)이다.
"요즘 처녀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아무도 시집 오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쌀판매일을 전담하고 있는 김씨 부인 장점희씨는 "건강도 여의치 않아 일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싶다"며 "며느리감은 착하고 예쁘기만 하면 좋겠다"고 웃었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사진 : 벤츠 타는 젊은 영농인 창수씨(왼쪽)가 아버지 김종기씨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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