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섬유산업은 1980년대 세계적 규모의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임금·지가의 급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기 시작, 이제는 퇴보 일로에 처해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나온 긴급 처방이 밀라노프로젝트. 하지만 이 혁신적인 전략의 결과를 살펴보면 현실성이 매우 부족한 정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6천억 원 이상을 투입한 프로젝트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공공부문이 민간 기업의 기술 혁신을 선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다.
1999∼2003년에 걸쳐 진행된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의 내용을 보면, 정책자금 상당 부분이 각종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는데 투입됐다.
하지만 국내외 기업들을 조사해본 결과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획득함에 있어 기업 내부나 타 기업과의 연계에 대부분 의존하며, 공공 연구센터나 대학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는 일은 드물다.
세계적으로 공공 연구기관의 설립으로 지역산업 고도화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연구인력이 1만5천 명이 넘는 대덕연구단지나 츠쿠바학원연구도시가 지역 기업들에게 미친 기술적 파급효과도 대단히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애매한 협력방식(거버넌스)을 지적하고 싶다.
이 사업은 중앙 및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해왔는데 서로 실적을 과시하는 반면 결과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는데 급급했다.
지역 기업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보다 공공연구센터와 같은 외양에 치중했다.
이번 감사원의 지적은 총론에서는 옳지만 각론에서는 핵심을 비껴간 것으로 보인다.
밀라노 프로젝트의 문제점은 비현실적인 패션어패럴밸리사업을 추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공공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기존 기업들과 대학에 정책자금을 배분한 데 있는 것이다.
오히려 밀라노프로젝트의 역량을 패션어패럴밸리사업에 집중 투입하여 이를 조기에 완공하고 국내외 우수한 패션기업들을 적극 유치하였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밀라노프로젝트가 별 성과없이 수천억 원의 공적 자금을 낭비했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향후 더 큰 문제는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산업정책의 대부분이 대구 방식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공공부문의 혁신역량으로 민간 기업의 낙후된 기술을 견인할 수 있다는 환상이 지역혁신체계라는 논리로 포장되어 더욱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침체된 지역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산업 분야 국내외 기술선도 기업들을 유치, 지역 기업들과 전후방 연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는 불과 10여 년 만에 산업 불모지에서 유럽의 선진산업 지역으로 도약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사례나 세계 각국의 첨단 클러스터 성장경험을 통해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평범한 사실이다.
권오혁 (부경대 경제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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