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런던 지하철의 '좌석 팔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런던 지하철이지만 지금은 지저분하고, 좁고, 더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부정확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지하철역마다 현재 각 지하철 노선이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서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난 여름 잠시 영국을 여행할 기회를 가졌던 필자도 - 런던이란 도시가 충분히 매력적인 것은 분명했으나 - 런던 지하철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과히 좋지 않은 느낌을 갖고 돌아왔다.

그런 지하철을 타고 매일 한 시간 이상씩 통학해야 하는 그 곳 사는 후배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에 비하면 - 가끔 기본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치명적' 단점만 뺀다면 - 우리나라 지하철은 붐비기는 해도, 깨끗하고, 넓고, 시원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 런던 지하철 안에서 눈에 확 띄는 '소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다름 아닌 '좌석 팔걸이'였다.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양 옆으로 자리잡은 긴 의자들이 그 좌석 팔걸이를 매개로 '일인분씩' 구획되어 있었다.

세상에, 얼마나 좋던지! 우리네 콩나물 지하철 안에서는 용케 자리에 앉아 가게 되더라도 낯모르는 옆 자리 사람들과 어깨를 부비고 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 그것이 늘 큰 고역이었다.

다리가 아파서 앉기는 앉아야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옆 사람과 거의 연인 수준으로 붙어앉아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때 개인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는 것이다.

옆 좌석 사람들과 최소한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인 셈이다.

'이인분씩' 자리를 차지하고 가는 얌체들과의 신경전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아니 그런데 이런저런 고민을 단 한 방에 시원하게 날려주는 팔걸이라니. 아주 단순한 고안물이지만, 그로 인해 사적인 공간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 공적 공간 안에서 아주 훌륭하게 '최소한의 사성(私性· Privateness)'이 탄생하고 있었다.

익명인 사람들과의 접촉이 일상화된 도시생활이라는 것은 늘 새롭고 역동적인 것으로 경험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적지 않은 긴장과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수단에서와 같이 좁은 공간 안에 많은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일정 시간 갇혀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 긴장과 불편은 거의 필연적으로 증폭된다.

익명적 도시인들 사이의 만남에서 요구되는, 약간은 무심한 듯한 우연한 스침이 쉽게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대중교통수단 안에서 사적 공간이 확보되지 못하는 것, 아니 사적 공간이 폭력적으로 침범당하는 느낌, 그것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 교통지옥과 고유가(高油價) 상황에서도 - 승용차를 고집하고, 대중교통을 선호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자가운전자들이 자기 차 안에서 완벽하게 혼자일 수 있음을, 아니 혼자라는 착각을 누릴 수 있음을 즐기는 경향이 있는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보다 많은, 보다 강도 높은 공적인 생활 시간·공간의 증가로 특징지어질 수 있을 오늘 우리의 도시적 삶 안에서 역설적으로 최소한의 사적 시간·공간의 확보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그것은 도시인들의 건강한 정신생활을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다.

삶의 질을 소리 높여 부르짖는 요즘, 대중교통수단 안에서도 최소한의 사적공간 확보의 필요성을 외쳐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천선영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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