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몽향 최석채 선생 타계

1955년 9월 13일자 매일신문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하나로 이른바 '백주의 테러'에 법정 필화까지 겪은 시대의 반골 몽향 최석채 선생이 1991년 4월 11일 숨을 거뒀다.

1917년 경북 김천 출생인 몽향은 1942년 일본에서 '도쿄 잡지' 법제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경찰 내부의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경찰이 됐을 정도로 대가 찼던 몽향은 언론계에 있으면서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직필을 고집하며 필화도 여러 번 겪었다. 1946년 '부녀일보' 편집국장을 맡은 뒤 '완연 테러단 같은 경찰행동'이라는 기사로 경찰에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그 다음이 위의 매일신문 사설로 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몽향의 날카로운 비판은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계속됐다. 1959년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3'15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사설 '호헌 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를 비롯해 '국민이여 총궐기하자' 등 명논설을 잇달아 집필했다.

선생의 언론자유 투쟁은 사후 9년이 지난 2000년 5월 국제언론인협회(IPI)의 20세기 언론자유영웅 50인에 선정되면서 세계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언론이 가진 정권의 견제도구 기능 수호의 본보기가 됐기 때문이다.

▲1510년 삼포왜란 ▲1902년 엔리코 카루소, 세계 최초로 음반 취입 ▲1965년 대중가수 이난영 사망 ▲1979년 우간다의 이디 아민 정권 붕괴 ▲2001년 해태제과 법정관리 신청.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