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센트루이스 지방재판소의 '제임스 허킨스 페킨'이란 판사는 재판정에 들어갈 때마다 늘 흰 수건으로 눈을 가린채 들어가 재판을 했다고 한다. 판사가 눈을 가리고 재판을 하겠다는 바람에 재판기록을 빠짐없이 큰 소리로 읽어줘야 하는 참여사무관(서기)과 판사석까지 매번 부축을 해줘야 하는 안내직원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만 1823년 부임후 14년 동안이나 계속 '눈가린 재판'을 고집했다니까 분명 평범한 판사는 아니었던 것같다.
그가 굳이 재판때 눈을 가린 이유는 소송당사자가 누구인지 얼굴을 보지 않아야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있다는 소신때문이었다는데. 눈을 가리지 않고 재판을 하면 자기앞에 서있는 피고인 등 소송당사자가 왕족이나 귀족 또는 자신의 친인척 등일 경우 판사도 인간인 이상 판결이 불공정해 질 수도 있으니까 아예 눈을 가림으로써 불공정 재판의 여지를 없애버리겠다는 의지 표출의 기행(奇行)이었다고 볼 수있다.
180여년전 별난 판사의 '장님재판'얘기를 뜬금없이 꺼낸 것은 요즘 한국 사법부의 일부 판사님들이 잇달아 선고하는 속칭 '80만원짜리 선거 재판'이 떠올라서다. 현행법상 대한민국 국회의원 후보는 무슨 고약한 짓을 하든 선거법에 안걸리고 걸려도 99만 원 이하의 벌금형만 선고받으면 금배지 달고 4년간 활개칠수있게돼있다. 대신 100만 원 벌금형을 받게되면 그날로 다 따놓은 당선도 무효. 국회의사당에서 금배지 반납하고 쫓겨나와야한다.
판결문을 쓰는 판사님 손끝에 국회의원 목이 왔다갔다하는 셈이다.
지난해 총선때 당선된 현역 국회의원중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의원은 무려 47명이나 된다. 그중 개혁, 개혁하던 열린우리당 의원이 30명, 썩었다던 '차떼기'한나라당 13명보다 곱절이 넘는다.
어느쪽에 겨가 묻었고 어느쪽에 뭣이 묻었는지 헷갈린다는 비판들이 나올만도하다. 국민들이 더 헷갈리는 대목은 깨끗하다는 혁신개혁정당 쪽 의원들이 왜 선거법은 더럽다는 보수정당보다 더 많이 위반했을까 하는 숫자타령이 아니다.
총선 직전 사법부가 소집한 전국 선거사범전담재판장 회의에서 '선거재판에서 벌금 80만 원은 적절한 형량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까지 나왔다면서도 막상 재판에서는 33명이나 80만 원 미만 형을 선고해 의원직을 유지시켜주고 6명만 징역형이나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한 사실이 국민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인 것이다.
실례로 열린우리당 한모의원 경우를 보자. 1심 법원은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었다.재판부는 '고질적 선거 부패를 뿌리 뽑지 못할 경우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큰 해를 끼친다'고 중벌 이유를 밝혔다. 옳은 말이다.그런데 3개월 후 2심 광주고등법원은 벌금 80만원으로 깎아 선고, 의원직을 지켜주었다.판결 이유는 '초선이고 성실히 생활한 점 등을 감안했다'나?
같은 사법부 안에서 "선거 부정은 이제 뿌리 뽑아야 할 구악이라는 개혁의지와 '초선이고 사생활'만 성실히 하면 선거법 쯤 위반해도 국회의원 자격이 있다"는 의견이 뒤섞여 나오니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재판이란게 컴퓨터에 양형 기준 수치를 입력해 두고 엔터 키만 누르면 형량이 계산돼 나오는 게 아니란 건 안다. 정상 참작이나 항소심에서의 사실 관계 발견 등에 의한 형량 변경또한 있을 수 있다.
어느 신문이 '80만 원짜리 선거 재판' 판결을 내린 일부 판사들의 판결을 두고 '국회의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법원'이란 유행가 가사에 빗대 꼬집었듯이 국회의원 앞에 주눅이 들어 80만 원 선고를 내린 것 아니냐고 덩달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입은 닫고 있어도 가슴은 끊임없이 느낀다. 감동을 주는 정치와 판결에는 감동 할 줄 알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것에는 차가운 가슴이 되는 것이 민심이다.
사법부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가 검찰이 선거법 위반 사범들을 '공공의 적'으로 기소하고 상당수 1심 판사들도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했음에도 거의 대부분 범법자를 개혁국가의 국회의원으로 인정해 준 80만 원짜리 판결에 대해 '솔로몬 같은 판사님' 이라고 손뼉 쳐 줄 국민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감히 물어본다.
"판사님, 국회의원'정치인 재판때는 제임스 판사처럼 눈을 가리든지 감아 보면 어떠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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