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대째 수의장사 김광범(35)씨

삶이 꿈틀대는 '큰 장'…신용으로 지켜야죠

"재래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유통 공간이 아니라 서민의 애환과 기층 의식이 담겨있는 우리의 생활 현장입니다. 특히 서문시장은 일제 식민통치 시절에 조선사람들이 도심에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서문 밖으로 옮겨진 애환을 안고 있으면서도 대구 3.1 만세운동이 이 시장을 중심으로 펼쳐지지 않았습니까. 시장은 민초들의 삶의 현장이자, 우리의 생활문화와 직결돼있으니 지켜나가야죠."

◆ 신의로 물려받은 4대째 수의 장사

서문시장 4지구 1층에서 4대째 장사를 대물림하기 위해 반듯한 직장(동아스포츠센터)을 그만두고 새내기 상인의 길로 들어선 김광범(35)씨. 광범씨는 백화점, 대형 할인점, 홈쇼핑, 무점포거래, 편의점, 전문점까지 다양하게 생겨난 각종 업태들로 인해 재래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지만 '결코 시장은 죽지 않는다'며 아버지 김이관(68, 큰장 김노인 마포상회)씨로부터 장사를 배우고 있다.

"저의 집안이 서문시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증조부때"라고 광범씨는 말한다. 광범씨의 증조부 김철희씨는 구한말 대구 인교동 떡전골목에서 삼베 명주 수의를 팔았다. 사보이 호텔이 들어서있는 인교동, 오토바이골목인 서성로 일대는 당시 대구의 최대 상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가 왜놈들이 대구 도심에 사람이 모이지 않도록 서문 밖에 공설 시장을 만들었다. 이때 증조할아버지는 인교동에서 같이 장사하던 친구 임경덕, 김경수씨와 함께 서문밖에 밭 세마지기를 사서 서문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증조부는 그곳에서도 삼베(麻布) 명주수의를 취급하는 마포상회를 열었다. 남는 자리는 나무 갈비, 장작 등을 팔려는 상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서문시장이 넓어지면서 양철지붕 밥장사도 생겨났고, 떡장사도 들어섰다.

◆ 증조부가 구입한 서문밖 밭 세마지기, 서문시장 터돼

"할아버지 김기홍씨는 14세 때인 20년대부터 장사를 배웠데요. 평소에는 큰장에서 장사를 하시다가 장날이 되면 경산 자인 칠곡 화원장으로 구루마에 짐을 싣고 도보로 5일장을 보러 다니셨답니다."

지붕도 없던 시절이라, 매일마다 집에서 짐을 구루마에 싣고 장에 내왔다가 저녁이면 도로 거둬갔다. 명주 삼베 아니면 입을 게 별로 없던 시절이라 장사밑은 어두웠다.

"요즘은 젊은 분들은 삼베옷이 불편해서 외면하고, 한달에 한두필 안동포를 짜는 농민들은 힘만 들고 돈이 안되니 삼베를 짜지 않는 추세예요. 게다가 품질낮은 중국산 수의가 판을 치고 있으니 더 어렵지요." 광범씨의 아버지 김이관씨는 40여년전에 할아버지로부터 이 자리에서 장사를 물려받았다.

◆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철저히 신용지켜

"지금도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가르치셨던 것처럼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고 할 정도로 상도를 따지세요. 장사가 안되어도 신용은 지켜야한다면서요. 돈 몇푼 남긴다고 이승에서 입는 마지막 옷인 수의로 장난치면 안된다고 말씀하세요. 어렵지만 그런 신의와 가격 경쟁력 두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시장이 살아난다고 봐요. "

광범씨는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는 큰 좌절을 겪기도 했다. "친구들이 수의를 판다면 장의사인줄 알아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런데 어느 선배가 부친상 때 수의를 해갔는데, 상을 마치고 정말 칭찬을 많이 받았다며 고맙다고 했어요."

물건을 팔고 좋은 말을 들으면서 광범씨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알게 됐다. "어떤 분이 30여년 염을 했지만 이런 수의는 처음 본다. 수의를 깁은 실까지 다 썩는 걸로 했으니 복받겠다'고 하는 말을 들을때는 뿌듯했어요."

◆ 시장은 곧 삶의 용기를 불어넣는 체험의 현장

광범씨는 옛날에 수의를 장만하는 집이 있으면 음식을 하면서 동네에 반(半)잔치를 열기도 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가난하던 시절, 어느집에서 부모님의 수의를 장만한다면 다 축하해주었죠. "

광범씨는 치열한 유통경쟁시대에 시장이 살아나려면 시설 현대화에 못지않게 살아꿈틀거리는 시장문화가 있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마치 전세계에서 밀려드는 쇼핑객들로 세계 시장사(史)의 신기원을 이룩하고 있는 미국 시애틀의 파이어플래이크 어(魚)시장처럼 '시장이 곧 삶의 역동성을 느끼는 최적지'가 되도록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쇼핑하고 돈쓰기에는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편할지 몰라도 물건을 고르고 부대끼면서 사람사는 냄새나 끈끈한 정을 느끼기에는 재래시장보다 더 좋은 곳이 없죠." 광범씨는 "아직 9일 오후 2시가 다 돼가는데도 마수조차 못했다는 아버지의 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이 업을 물려받으면 홍보마케팅부터 새롭게 할 작정이다.

◆ 시장에서 국내 유일의 특허 받은 수의 제작

광범씨네 가게는 홀치기한 손명주에 불교의 만자와 연꽃을 그려넣은 특허수의,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짜넣은 특허수의등 의장특허제품을 4가지나 확보,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추었다.

"윤달이 되거나 하면 백화점 등에서 납품 좀 해달라고 부탁이 들어와요. 그러나 백화점의 이익을 40%나 맞춰주려면 수의값이 너무 비싸져 포기했어요. 입소문을 듣고 오는 찾아오는 고객이 고마울 따름이죠." 광범씨는 "동산병원 앞 육교가 생기면서 동산상가는 덕보았지만, 4지구 등 시장내 다른 곳은 다 죽었다"며 그나마 시장을 살리려면 교통문제를 개선해달라고 말한다.

"시장은 왕래가 자유로와야 하지 않겠습니까.보십시오. 동산병원쪽에서는 지하도나 육교를 타고 건너와야하고, 4지구 북쪽 입구(현 중소기업은행이 있는 곳)에 있던 버스정류장은 아예 삼성예식장 쪽으로 멀어졌습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애 데리고 시장 보러오는 아주머니나 연세높은 분들이 큰장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1백년 전통의 대구 큰장을 서민경제의 중심지, 살아있는 생활현장으로 살아숨쉬게 하려면 시설 현대화 못지 않게 편리한 교통망을 구축해주어야한다고 광범씨는 강조한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