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 3, 4개를 하나로 묶은 순찰지구대 제도 시행 1년 8개월째. 경찰 인력부족에 따른 현장대응 능력 약점을 극복하고, 경찰장비의 집중으로 범죄대응력을 높이고자 했던 당초 목적은 이루어졌을까? 대구지역에서 사건, 사고가 가장 많다는 한 지구대를 찾아 그들의 24시간을 담았다.
관할면적 17.44㎢에 지역 내 인구만 14만 명.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 교대시간까지 평균 50건의 신고 전화가 오는 대구 달서구 이곡동 성서지구대. 61명의 지구대원이 3교대로 근무하는 이곳은 대구 중부경찰서 전체 관할인구보다 6만 명이 더 많다. 원룸, 빌라가 밀집된 계명대 주변은 술집, 음식점, 노래방, PC방 등으로 365일 불야성을 이루는 곳. 국민연금관리공단 뒤편 '쇼핑월드'로 불리는 거리는 신흥 유흥지로 하루에도 1, 2개의 술집이 문을 열었다 닫는다. 성서공단 내 모다아울렛 뒤편은 60여 개의 여관 밀집지대. 호림 네거리에서 화원 방향 왕복 12차로 구간은 새벽녘 오토바이 폭주족으로 몸살을 앓는다.
▲지구대는 주취자들의 쉼터
"아저씨,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제 이름은요 ×같거든요. 근데 왜요? 왜? 왜?"
8일 오후 7시50분쯤 노란색 반소매티셔츠에 청색 운동복을 입은 한 청년이 지구대에 들어서자마자 윗옷을 벗어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이어 경찰관 2명이 식당 주인과 함께 들어왔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씩씩'거리던 청년은 무엇이 분한지 발을 '쿵쿵' 굴렸고 여러 차례 의자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김인문(가명·68년생). 어렵게 이름을 알아냈다. 김씨는 이날 오후 6시쯤 달서구 이곡동 ㅊ아나고 식당에서 아나고 1인분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1만1천 원이 없다고 버티다 지구대까지 왔다. "경찰 너희들! 내 손에 죽고 싶어?", "근데 죄송하거든요", "집에 갈랍니다 이제", "결혼했거든요", "돈 있어요 여기", "사실은 결혼 아직 안 했거든요" 등 약 올리듯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던 김씨는 식당 주인이 1만1천 원은 그냥 없었던 일로 하겠다며 돌아서자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경찰이 친절하게 집까지 배웅하겠다며 순찰차 뒷좌석에 태우자 앞좌석을 향해 복싱선수가 샌드백 치듯 펀치를 날리며 몸부림쳤다. 그 사이 신고전화는 꾸준히 걸려왔다.
"저 사람은 그나마 곱게 돌아가는 겁니다. 한 대 얻어맞아도 우린 결박당한 것처럼 가만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인권으로 중무장(?)하고 덤비는데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한 경찰은 넋두리하듯 말했다.
0시30분쯤 만취상태인 김모(43·남구 대명동)씨와 강모(55·경기 부천시 소사구)씨가 지구대로 들어왔다. 달서구 파산동 ㅅ오락실 주차장에서 김씨가 강씨에게 애꿎은 시비를 걸고는 강씨의 그랜저 승용차 안테나를 부러뜨렸던 것. "사과만 받으면 용서하겠다"는 강씨에게 김씨는 온갖 욕설을 하며 "너 임마 이리 와봐. 니까짓 게 적반하장을 알아? 한자도 모르는게 왜 까부냐?"며 의자를 걷어차고 변호사를 대겠다며 큰소리쳤다. 이들은 결국 달서경찰서 형사계로 인계됐다.
그 사이 지구대 앞 쉼터에는 성서고등학교 앞에서 만취상태로 추운 거리에 쓰러져있었던 50대 남자가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바지를 입은 채로 소변을 봤는데 그것이 축축한지 자꾸 손으로 '꾹꾹' 짜내는 눈치였다. 경찰은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신분증 하나 없이 혀 꼬부라진 말투로 일관했던 그에게 졌다는 듯 일어섰다. "내가 누군지 아나? 너 이리 와바. 확 그냥!" 그는 허공을 향해 화를 냈고 약 2시간쯤 지나자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하지만 그 뒤로 두 명의 경찰이 지켜보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순찰차는 공공의 적(?)
밤 9시10분쯤 엄태식(43) 경사와 오상준(36) 순경과 함께 성서2호 순찰차에 동행했다. 구역은 성서지역의 가장 번화가인 '쇼핑월드' 유흥거리. 인도 위는 승용차로 빼곡했고 1차로 점령도 모자라 2차로까지 차량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차들이 불법 주정차되어 있었다. 특히 잠재적 음주차량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오 순경은 "길거리에 내놓은 불법 간이 간판은 차량 소통에 지장을 주는 것만 치우는데도 날파리처럼 다시 꼬여든다"고 순찰차에서 내렸다.
순찰차는 실로 행인들의 적(?)이었다. 술에 취한 행인들이 순찰차를 택시로 알고 세우는가 하면 그냥 지나치자 "그래 수고가 많다. 욕봐라 짜식들아" "이런 호로××, 치안에 힘들 쓰거라"며 비아냥거렸다. 일부는 순찰차량 뒤쪽을 '퉁퉁'치는가 하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욕을 하거나 이상한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흉기를 든 강·절도범보다 더 겁나는 게 술 취한 사람들이죠. 번화가로 들어가면 일부러 시비를 거는 행인들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가 없을 정돕니다. 흉악범은 경찰장구 등을 이용해 강력대응할 수 있지만 만취상태 행인들은 주취자보호법을 들먹이면서 온갖 행패를 다 부리거든요. 싱가포르는 술로 인한 벌금이 30만 원인데 우리나라는 그런 범칙금마저 없습니다." 엄 경사의 말이다.
밤 10시 35분쯤 8차로 도로에서 무단횡단하던 6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다짜고짜 순찰차 뒷자석에 올라탔다. "차비가 500원밖에 없는데 곽병원까지 좀 태워달라"는 할머니는 어린 시절 얘기부터 자식얘기까지 마치 외우고 있는 듯 신세한탄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엄 경사는 택시를 붙잡은 뒤 운전기사에게 1만 원을 주고 할머니를 태워보냈다.
"성서2호, ㅂ편의점 네거리 주취자. 신사 요청(경찰 출동 요망)." "38(알았다)"
밤 11시 3분쯤 쇼핑월드 네거리. 술에 만취한 남자가 대로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축 처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 쓰러지고를 몇 번 반복하자 귀찮다는 듯 경찰을 떼밀었다. "일어나 갈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비틀거리며 도로 한복판에 서서 몸을 기우뚱기우뚱하며 한참을 서 있었다. "저리 비켜! 다 필요 없어!" 지구대로 태워가려 하자 곧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밤 11시에서 새벽 3시 사이에 우리는 가장 긴장하게 되죠. 주5일제 시행으로 금, 토요일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랍니다." 잠시 담배를 피우는 사이에도 순찰차 옆에서 무전기에 귀를 곧추세운다.
밤 11시 20분쯤 음주운전 단속원들과 신당동 삼성상용차 입구 쪽에서 음주단속에 동행했다.
11시 40분쯤 단속원을 보고 그랜저 승용차가 음주측정을 거부하고 도주, 의경이 뛰어가고 곧 순찰차가 출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0시쯤에는 김모(43·여·달서구 진천동)씨의 베르나 승용차가 음주측정에 걸렸으나 기준치에 미달해 귀가조치됐다.
▲지구대원들의 한숨, 또 한숨
이동석 부소장은 "지구대 통합으로 단시간에 많은 인원을 집중적으로 현장에 투입, 조기진압이 가능하고 지휘계통이 단순화돼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며 "반면 3, 4개로 나뉘어 있는 파출소 제도보다 주민 대면 서비스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예산부족으로 14명 정도가 사용했던 파출소 건물을 60여 명의 지구대원이 쓰는 것도 애로사항"이라고 말했다.
술에 취한 사람들 보호에 많은 인력을 빼앗겨 '주취자 보호실'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보호실 안의 사고 가능성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인력을 뺏길 가능성이 크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경찰 장구를 사용할 수 있는 법률조항이 너무 애매모호해 공권력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라며 "일례로 수갑을 채울 경우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사건 용의자'가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혹 한번의 실수가 언론에 보도되면 경찰복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대 관계자는 또 "강제연행과 임의동행 사이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며 "가해자는 '안 가겠다'고 하면 그만이고 상대방은 '왜 안 잡아가느냐'고 따지는 애매한 상황이 많은데 이는 경찰이 기소권을 가짐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경찰관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당시에는 모든 업소들이 위축됐지만 교통위반과 같이 눈에 드러나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단속에 어려운 점이 많다"며 "단속했다해도 돈이 오가지 않았다고 하면 그만이고 그나마 지금껏 단속된 것도 처벌을 각오하고 신고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며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의 변화상을 설명했다.
류해경 경사는 "불과 950g의 권총을 오른쪽에 차고 몇 시간씩 근무하다보면 이것이 천근만근이 돼 외근 경찰의 절반이 골반에 병이 든다. 이런 상태로 무전기까지 차고 용의자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총구 끝이 허벅지에 닿아 늘 멍이 들어있는데 새벽 5시쯤 되면 피곤이 끝없이 밀려오는 거죠. 경찰관들 어렵게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오전 8시 30분쯤 아침 교대시간이 됐다. 밤 당직을 맡았던 김용근 제2사무소장은 "그나마 큰일 없이 하룻밤이 지나가서 정말 다행"이라며 "러시아워 교차로 꼬리 끊기, 과속 차량 계도 등을 끝내야만 퇴근할 수 있지만 밤 순찰자들 정말 수고 많았다"며 격려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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