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갓날에 한 총각이 살았어. 가난해서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가고, 날마다 산에 가서 나무나 해다 팔아서 먹고살았지.
하루는 이 총각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갔는데, 어느 곳에 가니까 수풀이 자욱하게 우거진 곳에 돌미륵이 하나 있더래. 워낙 깊은 산중이어서 찾는 사람도 없었나 봐. 그냥 돌미륵에 이끼가 잔뜩 끼고, 풀이 여기저기 나고, 떨어진 나뭇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거야.
'아이쿠, 미륵님이 이렇게 험하게 계셔서야 쓰나.'
하고, 이 총각이 정성 들여 청소를 했어. 이끼도 다 씻어내고 풀도 뽑고 나뭇잎도 쓸어내서 아주 말끔하게 만들어 놨단 말이지. 그래 놓고, 그 다음부터는 나무를 하러 산에 가면 장기판을 하나 들고 갔어. 가서 돌미륵 앞에다 장기를 떡하니 벌여 놓고,
"미륵님, 심심하실 텐데 저하고 장기나 한 판 두시지요."
하고서 장기를 두는 거야. 저 혼자서 둘이 두는 것처럼, 한 번은 제 것을 두고 한 번은 미륵님 것을 두고, 이렇게 하는 거지. 그러다 보면 제가 이길 때도 있고, 미륵님이 이길 때도 있고, 이랬어.
하루는 이 총각이 미륵님 앞에 장기를 벌여 놓고서,
"미륵님, 오늘은 그냥 둘 것이 아니라 내기를 하십시다. 만약에 미륵님이 이기시면 제가 떡을 한 말 해다가 제를 올려 드릴 터이니, 만약에 제가 이기거든 저를 장가 좀 보내 주십시오."
하고는, 장기를 뒀어. 뭐 자기 차례라고 더 잘 두는 법도 없이, 미륵님 차례에도 공을 들여서 아주 정직하게 뒀지. 그렇게 두다 보니까, 공평하게 뒀는데도 끝에 가서는 자기가 덜컥 이겨버렸단 말씀이야.
"미륵님, 이 판은 제가 이겼으니 저를 장가보내 주시는 걸로 알고 그만 가겠습니다."
하고 집에 갔지. 가서 그 날 밤에 잠을 자는데, 아 꿈속에 미륵님이 떡 나타나서 하는 말이,
"지금 당장 일어나서 동쪽 길로 가거라. 가다 보면 너를 기다리는 색시가 있을 테니 장가를 들도록 해라."
이러거든. 탁 깨 보니 꿈이야. 당장 일어나서 동쪽 길로 갔지. 한참 가다 보니 길가 나무 밑에 웬 색시가 보따리를 안고 서 있지 뭐야.
"웬 색시가 이 밤중에 여기 서 있소?"
물으니까,
"꿈속에 미륵님이 나타나서 이리로 가 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런단 말이야.
"아, 나도 꿈속에 미륵님이 나타나서 이리로 가 보라고 해서 왔소이다."
하고서, 뭐 더 재고 자시고 할 게 있나? 그 자리에서 그냥 찬물 한 그릇 떠다 놓고 혼인을 했지. 그래서 참 재미나게 잘 살았어.
그런데, 그 뒤로 이게 소문이 나 가지고 아주 난리가 났어. 무슨 난리냐고? 아, 장가 못 간 노총각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돌미륵하고 장기를 두자고 줄을 섰으니 난리는 난리지. 그 노총각들이 다 장가를 갔느냐고? 아니, 못 갔어. 왜냐고? 장기 둘 때 제 차례에는 잘 두고 미륵님 차례에는 대강 두고, 이러니까 미륵님이 괘씸해서 안 보내 준 거래.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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