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빛'의 역정 26년-(2)용서와 화해

암살 저격범 향해 "형제여 용서합니다"

"인류의 역사적 공존을 위해 용서는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용서와 관용의 부족으로 그동안 인류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서로 화해할 줄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재화를 탕진했으며 용서할 줄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습니까? 평화야말로 인류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평화는 용서로부터 가능한 것입니다."

1981년 5월 13일, 환갑을 맞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신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 베드로 광장을 지나가던 교황이 터키의 과격파 이슬람교도인 알리 아그차의 총격에 쓰러진 것이다. 교황의 상태는 위중했다. 복부와 오른쪽 팔꿈치 및 왼손 검지를 관통한 3발의 총알은 교황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았다. 교황은 6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피격된 지 4일 만에야 간신히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이태 뒤 교황은 아그차가 복역하고 있던 로마 교외의 레비비아 교도소를 찾아가 말했다. "아그차씨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제게 한 행동을 모두 용서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품안에서 한 형제이니까요." '용서는 세상에 죄보다 강한 사랑이 현존한다는 증거'라던 자신의 신념을 목숨을 담보로 증명한 셈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다른 종교에도 '진리의 씨앗'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종교 간의 대화와 화해, 인류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끊임없이 북돋았다. 재위기간동안 무려 100회 이상이나 타종교를 향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적어도 25회 이상 '용서를 구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종교를 초월한 전 인류의 진정한 화합을 직접 실천했다.

교황은 1986년과 1993년, 2002년 3차례에 걸쳐 평화의 사도 성 프란치스코의 성지인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세계 종교 지도자 기도모임을 개최했다. 이 모임은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같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유다교와 이슬람, 불교, 유교, 힌두교는 물론 조로아스터교와 아프리카 토속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종교로 인한 갈등과 전쟁, 유혈 사태를 종식시키자는 데 뜻을 모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동방 정교회와 이슬람 사원, 유대인 시나고그를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다. 1999년에는 종파 분리 1천년 만에 그리스 정교회와 화해했으며, 루터파 개신교와도 구원론 논쟁을 종식하는 선언에 서명했다. 또 2001년 5월 시리아에서 교황으로선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을 찾아 기도를 드렸으며,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도 악수를 나눴다. 1999년엔 교황청에서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을 만났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땅 인도를 찾았다.

교황의 노력은 1994년 '3천년을 맞는 칙서'를 통해 가톨릭교회가 과거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불관용, 불의에 대한 침묵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하는 자기고백에서 출발했다. 교황은 "신앙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인류'라는 하나의 가정에 속해 있는 형제·자매로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며 "참된 종교에는 편견이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종교의 이름으로 적대감이 정당화되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2000년 3월 12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참회의 미사'는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다시 쓸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2천년 동안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죄를 사상 최초로 공식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것. 교황은 이날 중세 종교재판, 십자군 원정, 유대인 박해 등 7가지 잘못을 참회했다. 이 미사를 두고 교황청 대변인이 "너무도 의미심장한 행동으로, 각 교회나 신자 개개인이 그 중요성과 의미를 받아들이기에는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는 논평을 냈을 정도였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사진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자신을 저격한 알리 아그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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