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조와 함께

부처님 출타 중인 빈 산사 대웅전 처마

물 없는 허공에서 시간의 파도를 타는

저 눈 큰 청동물고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뼈는 발라 산에 주고 비늘은 강에나 바쳐

하늘의 소리 찾아 홀로 떠난 그대 만행,

매화꽃 이울 때마다 경을 잠시 덮는다

혓바닥 날름거리며 등지느러미도 흔들면서

상류로, 적요의 상류로 헤엄쳐 가고 나면

끝없이 낯선 길 하나 희미하게 남는다

민병도 '풍경'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에서 삶의 의미를 천착하여 보여준다.

물 없는 허공에서 시간의 파도를 타는 청동물고기, 바로 우리의 모습이리라. 산에는 뼈를 발라서 주고 강에는 비늘을 바치고, 하늘의 소리를 찾아 만행 길에 오른다.

적요의 상류에 무엇이 과연 기다리고 있을까? 끝없이 낯선 길 하나 희미하게 남는다고 한다.

그럴지라도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또다시 저벅저벅 걸어가야 하리라. 과정 그 자체에서 이미 삶의 참된 의미가 구현되고 있는 것이기에.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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