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소리가 사라진 이른 아침, 낯선 적막감에 몸을 떤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진 듯이 허전하고 어색하다.
TV로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으면 오늘 무엇을 입어야 할지 너무 고민이 돼 견딜 수 없다.
학교에서도 공부가 잘 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신다.
무언가 아주 중대하고 거대한 일이 일어났는데 나 혼자만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휴대전화를 꺼두니 은근히 불안해지고 자꾸 누군가에게 연락이 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루종일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
TV, 라디오, 인터넷, 신문, 휴대전화 등 대중매체들을 일시에 '끊었을 때' 나타나는 '금단증세'들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대중 매체는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자 정보의 창고이며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약 이들이 대중매체와 단절을 시도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천선영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교양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이 1주일간 일체의 대중매체를 접하지 않고 살아보기를 요구했다.
◇엄습하는 고립감과 막막함=공통적인 반응은 엄습하는 고립감과 막막함이다.
TV 소리에 잠을 깨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인터넷 블로그와 휴대전화를 삶의 일부로 여기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에게 대중매체와의 떨어진 일상은 어색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TV소리가 사라진 이른 아침은 "그 낯선 적막감 때문에 잠이 더욱 몰려오는 것 같고 식구 한 명이 줄어든 것 마냥 허전하고 어색한 기분"이고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블로그'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어제 저녁 정성껏 올린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이웃이 오늘은 무슨 음악을 올렸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기현·전자전기공학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고 도태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무인도에 표류한 외로운 인간 같다는 느낌"도 들고 "무언가 아주 중대하고 거대한 일이 일어났는데 나 혼자만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점점 고립되어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박경정·불어불문학과) △"TV를 안 본지 이틀 정도 밖에 안 지났을 뿐인데도 친구들이나 동생들과 나눌 이야기 소재가 없어졌다.
"(김현주·고고인류학과) △휴대전화가 없다는 사실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누군가가 나와 연락이 되지 않아 안달하지는 않았을까. 주차 시켜놓은 차에 문제가 생겨 차를 빼달라고 전화 걸지는 않았나, 집에 급한 연락이 생기지는 않았나, 뜻밖의 횡재가 있지는 않았나, 헤어진 남자친구가 연락하지는 않았을까 등등…. 오히려 휴대전화를 24시간 켜놓고 언제든지 연락 가능한 상태로 있을 때보다 안달하고 초조해 하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 (이소영 일어일문학과) △극도의 '심심함'은 가장 큰 괴로움이었다.
남는 시간에 도대체 무얼 해야 할까. 잠자고 청소하고 책을 읽어봐도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우선 목욕부터 가기로 했다.
목욕탕에 가면 2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친김에 집안 청소까지 해버렸다.
점심을 먹고 나니 또 할 일이 없었다.
도대체 하루해가 왜 이리도 긴 것인지…."(장아금·수의예과)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며칠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가혹한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TV의 유혹을 피해 집 밖, 놀이터로 도망쳤다.
두 동생과 운동을 하며 나름대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TV를 보고 인터넷을 하는 것 이외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TV 드라마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상쾌한 설렘이 가슴 가득 벅차 올랐다"(박경정·불어불문학과)
대화의 소재도 달라졌다.
"대중매체와의 단절을 시작하고 난 후부터 우리의 대화 주제가 사뭇 달라졌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많은 연예인들의 가십거리나 드라마를 주제로 얘기를 했고 그것이 하나의 재미였다.
단절을 시도하면서부터 우리들 자신에 대한 미래에 좀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수진·미생물학과) "TV가 없으면 확실히 가족간의 대화는 늘게 된 것 같다.
오랫동안 연락지 못했던 친구와 전화통화도 하고 취침시간도 빨라졌다.
"(김미선 의예과)
이들은 '접속'한다.
TV나 인터넷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느냐가 아니라 '접속'한 상태가 중요한 셈이다.
"사람들과 접속돼 있지 않다는 불만족이 제일 불편을 느끼게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몹시 불편해 하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내가 휴대전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접속돼 있고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도구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김민정·경제통상학부)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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