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묵주(默珠)'를 움켜쥔 그녀는 눈을 꼭 감고 기도를 드리는 중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혼자 중얼거리고는 곧 오른쪽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살점 하나 없는 얼굴에 핏기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야윈 그녀는 누워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는데도 기도할 때만큼은 경건한 표정이었다. 황영란(42.여)씨는 무려 6가지 질병을 한꺼번에 앓고 있다.
"까닭도 없이 자꾸 병만 생기니 마음이 답답하고 감당이 안되네요. 이 손으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게 기도드리는 일 뿐이고...우리 아들, 딸, 아빠 어디서든 건강하게 지내기를 기도하고 또 하지요."
대퇴골 무혈성 괴사증, 천식, 간염, 류마티즘 관절염, 폐쇄성 폐질환에 자극성 장증후군... 황씨의 몸 속에 기생하고 있는 병이다. 괴사증으로 뼈가 점점 썩어들어갔고 이를 잘라 인공관절을 삽입했지만 염증이 생겨 제거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다.
"10년 전부터 숨쉬기가 어려워지더니 몸 마디마디가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그 때는 참을만 했는데..."
황씨와 남편(44)의 부모는 모두 한센병 환자다. 그런 부모를 둔 죄(?)로 힘든 경험을 했던 그는 18년 전 같은 종교에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남편과 결혼했다. 아들 수환(17), 딸 수진(15)를 낳았고 행복했다. 10년 전 양계장과 돈사(豚舍)를 했던 남편은 보증을 잘못 서 빚더미에 올랐다. 그 해 겨울 집은 전기누전으로 불까지 나 싸그리 타버렸다. 불행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남편은 그래도 기죽지 말자며 이곳저곳에서 막일을 했지요. 빚은 늘어만 갔고 애들은 커갔고 저는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 봉양에만 몸을 내맡기고 있던 시절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황씨는 틈나는대로 우유를 배달했고 식당보조를 하면서 집 안팎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결국 남편은 3년 전 신용불량자로 빚쟁이한테 쫒기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
"'조금만 참아, 곧 돌아올게'는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났는데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아요...그래도 전 그 사람 믿습니다. 어디서 '짠' 하고 나타날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경남에 있는 수환, 수진이는 주말에 병원을 찾는다. 황씨도 그 날이 유일한 낙이다. 아이들은 '곧 돈 벌어서 호강시켜줄테니 몸만 빨리 나으라'고 기도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수진이는 '헤모글로빈혈증'으로 혈액이 산소를 제대로 운반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는데다 얼굴 한쪽의 뼈가 자라지 않아 성형수술이 필요하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 얼마나 착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는지 몰라요. 엄마가 이렇게 누워만 있어 바라지도 못하는데도...수환이는 체육선생님, 수진이는 미용사가 되고 싶어해요."
얼마 전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돼 월 30여만원을 받고 있다. 대구 남구청에서 간병인을 보내줘 근근히 투병생활을 하고 있지만 황씨는 '욕창'만은 피하고 싶어 수시로 몸을 뒤척인다. 아들을 생각하며 독한 여자가 돼야 한다고 다짐한다.
황씨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해 물어봤다. 왼쪽 눈이 실명됐고 오른 쪽 눈도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기도 속에 희망이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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