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달래 꽃길 산행

올해는 3월 늦추위가 용심을 부리는 바람에 진달래가 꽃망울을 늦게 열었다. 비슬산이나 화왕산 정상은 20일 쯤이나 되어서야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트막한 야산은 지금 온통 진달래 밭이다. 굳이 진달래로 산상화원을 일군 명산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까운 산에서 진달래 산행을 즐겨보자. 특히 진달래가 만발한 소나무 숲길에서 송림욕을 즐기며 가볍게 걷는 트레킹이라면 봄을 만끽하기에도 그만이다.

이 조건에 딱 들어맞는 코스가 비슬산자락인 용연사 입구 반송리~화원읍 본리리 남평문씨 세거지로 이어지는 산행코스다. 느릿느릿 진달래꽃을 보며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시간 걱정 없이, 교통체증 걱정 없이, 몰리는 인파 걱정 없이 가족과 함께하는 조용한 산행은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승용차라면 출발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명곡미래빌 옆의 명곡초등학교다. 이곳에서 용연사로 넘어가는 도로가 새로 났다. 용연사 방향 표지판이 있어 이 길을 찾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이 2차로 도로를 따라 10여 분 오르면 고갯마루 정상에 이른다. 양쪽에 차들이 주차해 있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가 있는 곳이다.

산행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막이 있는 왼쪽 임도를 택한다. 임도를 들어서자마자 진달래가 반긴다. 선분홍 색깔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5분여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30여m만 포장된 시멘트 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바로 오른쪽 숲길로 들어서 능선 쪽을 향해야 한다. 임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운치 있고 제대로 된 송림욕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숲길로 들어서서 처음 마주치는 꽃은 시들기 시작한 생강나무꽃이다. 가지를 꺾으면 생강냄새가 난다. 노란색 꽃이나 생김새가 산수유와 흡사하다. 생강나무는 산행 내내 듬성듬성 심심치않게 나타나 봄색깔을 더해준다.

벌써 소나무 숲길이 시작됐다. 소나무 사이사이에 활짝 핀 진달래가 단조로운 산행에 맛을 더해준다.

어릴 적 고향을 생각하며 진달래 꽃잎을 따 입에 넣어 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큼한 맛은 여전하다. '꽃술싸움'도 해볼 만하다. 수술보다 훨씬 긴 암술을 뽑아 서로 X자로 잡아 걸고 끌어당겨 끊어지는 쪽이 진다. 꽃술을 짧게 잡는 것이 이기는 요령이다.

시멘트 길에서 200m 정도 가면 왼쪽에 세 개의 산소가 있고 이곳에서 다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 능선 쪽을 향한다. 다시 10~15분 오르면 망부석이 두 개 서 있는 산소가 있다. 산소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 길은 희미하지만 능선으로 바로 올라가면 등산로가 나온다. 왼쪽으로 돌아 내려오면 두 길은 다시 만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산행객을 만났다. 그만큼 조용한 산행길이다. 이틀에 한번 꼴로 이곳을 찾는다는 박우목(60'화원읍 설화리)씨는 "가까우면서도 산 전체가 소나무 숲이어서 송림욕으로는 그만"이라며 "화원 명곡 아파트단지에서 이곳까지 와서 돌아가면 10㎞ 정도로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고 소개했다.

망부석이 있는 산소에서 5, 6분 소나무숲길을 걸으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택한다. 길을 모르면 나무에 매인 리본을 찾으면 된다. 능선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부터 내리막길이다. 솔잎이 수북이 쌓인 데다 길이 푹신푹신해 걷는 기분이 괜찮다. 군데군데 진달래꽃이 발걸음을 잡는다. 솔향과 진달래꽃 향기가 상쾌하다. 괜히 쉬어가고 싶은 곳이라 배낭을 벗는다. 번잡한 산길이 아니라서 더 좋다.

능선을 내려서면 다시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올라가면 까치봉이다. 이곳까지는 화원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운동 삼아 많이 찾는 곳이다. 곳곳에 쉼터를 마련해 뒀다. 왼쪽 내려가는 길은 지름길. 바로 가는 길과 제3쉼터에서 만난다. 군 보호수라는 푯말이 있는 소나무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이곳서 남평문씨 세거지가 있는 인흥서원까지는 0.4㎞다.

◇남평 문씨 세거지(世居地)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200년 전부터 이룬 마을이다. 전통한옥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홉채의 한옥 건물과 두 개의 재실, 서고 등의 옛 건물들이 사람 키보다 큰 흙돌담안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홉 채의 한옥은 지은 지 100년이 됐다. 시원한 대청마루와 고풍이 물씬한 대들보, 잘 가꿔진 정원 등이 자랑거리다. 일반관광객들에겐 공개하지 않는다. 대신 더 아름다운 건물인 입구의 수봉정사와 광거당은 돌아볼 수 있다. 둘 다 거북으로 장식된 나무빗장이 달린 대문이 특이하다. 수봉정사는 1930년대에 세워진 건물로 손님을 맞거나 일가족 모임 때 사용하던 장소다. '수봉정사' 현판글씨는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이 썼다.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오른쪽은 문중서고인 인수문고. 1만여 권의 고서와 목판을 소장하고 있다. 수봉정사 뒷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문중 자제들의 수학장소인 서당이자 한학자들의 강론의 장이었던 광거당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자 마주치는 흙담은 안쪽 사랑채를 바로 볼 수 없게 만든 헛담이다. 광거당 건축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현재 대구시티투어 코스로 지정돼 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며 마을 입구에 있는 문화유산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글·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사진: 송림욕과 진달래 산행을 겸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반송리~남평문씨 세거지 산행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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