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낙동면 신오리 조병희(趙丙喜·70)씨. 그는 올해로 이장 경력 40년을 기록한 전국 최장수 이장이다. "지난 40년을 돌아보면 말로 다 못할 어려움이 많았지요. 농사와 집안 일은 안 사람이 도맡았고 나는 그저 빚이나 떠안으면서 마을과 주민들을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조씨가 마을 이장의 첫 임명장을 받은 것은 1965년 3월 17일. 임명장을 받기 3년 전부터 이장일 직무대행을 한 것까지 치면 올해로 이장 생활 43년이다. 제대 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당신 8촌형이 이장을 하다 고향을 떠났으니 대신 맡아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떠밀려 이장직과 인연을 맺기시작했다.
당시 마을 전체를 통틀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던 터라 주민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그는 "그렇게 맡은 세월이 이젠 내 인생 전체를 차지했다"고 말했다.당시 이장이 맡았던 일은 비료와 농약, 각종 종자 등을 주문받아 집집마다 배달하는 일을 비롯해 공과금 대납과 호적신고 업무, 병해충 구제, 영농자금 배정, 산림 순찰, 각종 부역, 주민 동원 등 100여 가지가 넘었다.
조씨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 마을 젊은이 대부분이 이웃마을로 머슴살이를 떠나야 했다"며 "1년간 머슴살이로 받은 벼 몇 섬으로 5~7명 정도의 가족 생계를 유지하는 극빈 마을이었다"고 회상했다. 7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불기 시작한 '새마을운동'을 비롯해 '사랑방 계몽운동'과 '쥐잡기운동', '기생충박멸운동', '가족계획운동' 등 자고나면 이장이 해야 할 일이 생길 정도였다.
농촌잘살기운동으로 80년대 중반까지 떠들썩했던 마을은 인근 구미와 김천 등지에 대규모 공장지대가 들어서고 마을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적막해졌다.조씨는 "새마을운동이 어느 정도 살기좋은 마을로 변화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미신이라는 이유로 전통이 사라지고 농촌이 노인들만 남게 했다"고 말했다.
조씨에게는 주민들이 함께 힘들여 마을을 탈바꿈시키고, 전기와 전화가 들어오면서 겪게 된 당시의 기쁨과 감동들, 마을 주민들이 전달해 준 몇 차례의 감사장과 감사패 수여, 30여 개에 이르는 각종 표창과 포상 등 지난 40년간의 일들이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포장 사업을 마칠 때까지 이장일을 계속할 작정"이라고 말하는 그는 70세 청년이었다.
상주·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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