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인수 어머니

출근길에 인수를 만났다.

어머니 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늘 손을 붙잡고 다니던 자폐 아동이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할머니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 인수 아니냐?" 5년 가까운 세월이 훌쩍 지났는데 그 아이는 나를 알아보고 단숨에 달려와 안겼다.

그때 인수는 특수학교를 다니며, 수업이 끝난 후에는 언어치료 등 각종 과외 학습도 부지런히 다녔지만 지금 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우리 집에는 대대로 이런 일이 없었단다.

너희 집 핏줄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 인수를 키우면서 시어머니로부터 늘 들어온 구박에 인수 어머니는 이력이 났고, 아이 하나를 더 낳으라는 친정어머니의 권유에도 도저히 자신이 없노라고 했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장애 아이를 낳고 키워봐야 알아요. 특수교육이 어쩌고, 장애인 복지가 어쩌고 하지만…." 늘 그렇게 말끝을 맺지 못하던 인수어머니는 내 기억엔 피로에 짓눌린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인수의 손을 잡아당기며 내 곁으로 다가섰다.

"인수 애미요? 이놈보다 먼저 갔어요." 인수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자신의 지병은 제대로 치료도 못하고 뒤늦게 입원을 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죽을 때는 자식과 함께 가야지요. 이런 자식을 혼자 남겨두고 어떻게 눈을 감겠어요?" 순간 인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 전율처럼 내 전신을 스쳐 지나갔다.

어느 틈에 인수를 태운 버스는 저만치 네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떠들썩하게 기념식을 하고 축사와 격려사는 많이도 하지만, 인수 어머니가 저 세상에서 편히 눈 감을 수 있도록 속 시원한 말 한마디는 그 누가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부질없는 생각을 이어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다 예비 장애인이요, 그 가족인 것을…." 학산종합사회복지관장 백남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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