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위탁관리, 이대로 둘 것인가. 전문가들은 "위탁관리업체의 내부 혁신, 입주자대표회의의 철저한 감시, 그리고 지자체 및 정부 차원의 시장 질서 회복 노력이 위탁관리 시장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혁신 1-위탁관리 관행 개선
위탁관리는 1999년 아파트 비리가 전국을 강타한 이후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며 전문업체에 관리 전권을 맡기는 아파트 단지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대구는 특정 독점 업체가 잘못된 관행을 고집해 위탁관리제도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엄연한 위탁관리업체 직원이지만 특정 업체는 대부분이 입주자대표회의 소속이다.
법인세, 부가세 등 조금이라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직원 월급과 4대 보험을 아파트 관리비에서 바로 지급하도록 입주자대표회의와 계약을 맺고 있는 것이다.
대구 위탁관리의 고질적 병폐는 관리사무소가 사실상 위탁관리업체와는 별개 조직으로 운영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효율절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본사 인력이나 기술지원 없이 위탁수수료만큼 관리비만 더 증가한다는 주민 불만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돼 입주자대표회의, 위탁관리업체 양쪽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하지만 전국 1위를 달리는 서울 ㅇ업체는 관리사무소 직원을 업체 소속으로 명확히 규정해 인사·노무 전반을 책임지고 있고, 이 같은 경영체제가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또 철저한 직원 교육을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우며 연간 20차례 이상 각종 전문 교육을 실시,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아파트 주민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식 위탁관리 관행이 주민 불신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수도권은 업계 스스로가 '내부 혁신'을 외치며 '도급제' 형태의 위탁관리 방식도 거론하고 있다.
각종 아파트 위탁관리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근본 대책으로 빌딩 등과 같이 총괄 도급계약을 맺어 근로 관계를 명확히 하고, 입주자대표회의와 위탁관리 회사간 책임한계를 확실히 구분하자는 것.
◇혁신2-업체 선정 및 평가 기준 개선
대구에도 위탁관리를 잘하는 업체들이 분명 있다.
이들 업체는 위탁관리업체 선정 및 평가 기준을 대폭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업체간 공개경쟁을 벌이는 서울, 수도권, 부산 업체들은 관리업체 선정 공고 및 평가 기준이 대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
취재팀이 2004년 8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ㄷ아파트와 같은 해 3월 부산 ㅎ아파트의 위탁관리업체 선정 공고를 입수해 대구 동구 모 아파트와 비교해 본 결과 경기, 부산의 아파트는 '감독 관청으로부터 행정처분 등을 받은 업체 제외', '아파트 단체와 소송이 없는 업체' 등 결격 사유를 규정하고 있지만 대구는 해당 조항이 아예 없었다.
업체 선정 방법도 경기, 부산은 설명회 등 공개 경쟁 체제를 명시한 반면 대구는 입주자대표회의 서류심사만 통과하면 바로 주민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업계는 "관리실적, 납입자본금 같은 1차 경영 평가만으로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하는 것도 문제"라며 "입주자대표회의 등이 관리비 부과 금액, 단지주변 시설 관리 방안, 인건비 등 아파트 운영계획과 관련한 2차 평가를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자체와 정부의 노력
전문가들은 "위탁관리를 업계 스스로의 자정 노력에만 맡겨 둘 문제는 아니다"며 "이젠 지자체 및 정부 차원에서 아파트관리 정책 모델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의무관리 대상 아파트 645만 가구 중 위탁관리 비중은 64.4%에 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대구 또한 불과 10년 새 3배 증가해 30%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나 정부의 위탁관리 아파트 정책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위탁관리업체와 주민, 위탁관리업체를 둘러싼 주민간 갈등 등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행정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택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아파트관리 업무 전반에 걸쳐 입주자의 요구가 있으면 시설, 장부, 서류 등을 조사 또는 검사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어렵게 공무원을 찾아가도 '나는 모르쇠'"라며 "민·형사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대구는 늘어나는 아파트 인구에 따라 아파트 분쟁조정위원회, 아파트 분쟁조정지원센터 설립 등 적극적 행정을 펼치고 있는 타 지자체와 달리 여태 소극적인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8개 구·군 중 아파트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한 구·군은 지난해 출범한 수성구, 달서구 2개 뿐이며 그나마 주민 홍보가 전혀 안돼 분쟁조정 실적은 한 건도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대구시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대아련)는 "지자체별로 하루 빨리 조례를 제정해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적극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기초자치단체의 분쟁조정위원회를 넘어 시 차원의 아파트관리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2년 전국 최초로 '아파트관리 평가모델 구축방안'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용역 의뢰했고, 연구원은 "표준관리위탁계약서 제도를 도입해 위탁관리 범위와 처리 방법을 명확하게 규정해 위탁 갈등을 방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위탁관리업자 선정시 적절한 업체가 선정되도록 입찰 참여 회사들을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관리책임, 손해배상, 위탁관리수수료, 직원 임금 등에 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또 대아련은 정부 차원의 노력도 요구하고 있다.
연합회는 "주택법, 조세 특례제한법 등에는 아파트 관리와 관련해 명확하고 표준화된 조항이 거의 없다"며 "아파트 관리 등에 대한 시비를 없애고,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관리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고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역시 주인은 주민
아파트관리 분야는 건축, 기계, 전기, 설비 등 수백 개여서 주민들이 무관심하면 관리비가 어떻게 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연구위원은 "효율적인 아파트 관리의 핵심 키워드는 여전히 주민"이라며 "주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 주체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아련 김재성 사무처장은 "아파트 관리의 목표는 투명성과 전문성, 최종적으로는 주민 권익 보호다.
몇 몇 위탁관리업체들의 관리 부실로 전체 아파트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다"며 "위탁관리 문제, 부당한 관리비 인상 등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 곧 주민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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