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권위, 비정규직법안 '제동' 파문 확산

대통령 직속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가 정부와 노동계가 대치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에 대해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자 정부와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인권위 권고를 계기로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될 경우 정부와 국회의 '4월 처리' 방침에도 변화가 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권위의 이번 의견 표명은 특히 그동안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놓고 노-정이 핵심 쟁점으로 대립하던 예민한 부분을 다뤄 현재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노사정 대화에서 노동계 입지를 한층 강화시킬 전망이다.

인권위는 14일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2개 법안(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노동인권의 보호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에는 사실상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기간제 법안은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을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사유제한' 규정을 두는 것이 필요하고 사용 기간도 일정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인권위는 또한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 동일노동은 동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을 명문화해 임금에서 만큼은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밝혀 그동안 노동계의 주장과 같은 의견을 보였다.

아울러 파견업종을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전 업종으로 확대한 정부의 '네거티브방식'이 파견 근로자의 남용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보고 파견 허용범위를 정하고 나머지를 제한하는 '포지티브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인권위의 이같은 권고안이 발표되자 노동계는 즉각적인 환영의 뜻을 밝혔으나비정규직 입법화를 추진해온 정부와 여당은 물론 경영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비정규근로자 관련 2개 법안에 대한 인권위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며 "정부여당은 인권위의 정책권고를 전면 수용한 법개정에 즉각 돌입할 것"을촉구했다.

민주노총도 "인권위의 권고안이 몇가지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으나 전체적으로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해 핵심적이고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환영한다"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노동부는 인권위의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의견을 지나치게 인권차원에만 치우친 견해라며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는 인권 차원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더욱이 노사정이 대화를 진행중인 상황에서 이런 의견을 낸 것은어느 한쪽을 편드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비정규직 법안은 노동시장, 국가경쟁력, 일자리 창출 등복합적 측면에서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문제"라며 "인권위가 의견을 발표한 것자체가 업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노동시장의 문제를 인권, 정치적 문제로 다루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수위를 한층 높인 우려를 표명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대로라면 노동시장 유연성이 없어지고 고용을 기피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인권 측면만 고려하고 경제현실 등은 고려치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이를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를 기대하던 열린우리당도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고 불쾌감을 드러내며 비정규직법안의 '4월 처리' 방침에 변화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정부여당과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인 인권위의 권고를 계기로 비정규직 보호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될 경우 법안 처리 시기가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동연구원 한 연구위원은 "인권위 권고안은 그동안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던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논란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당초계획했던 일정도 정부 내 다른 기관에 의해 순항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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