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엉덩이의 재발견

장 뤽 엔니그 지음/예담 펴냄

고대 생물학자 이브 코팡에 따르면 300만~400만년 전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엉덩이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영장류에 속하는 193종 가운데 인류만이 항상 돌출되어 있는 반구형 엉덩이를 갖고 있는 것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면서 엉덩이 근육이 발달한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엉덩이는 인간의 진화를 나타내는 중대한 신체 부위지만 그동안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엉덩이는 모욕이나 경멸, 음담패설 혹은 걷어차임을 당하는 등의 우스꽝스러운 대상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프랑스에서도 유독 엉덩이는 부정적인 표현에 자주 등장하며 상스러운 농담의 성공을 좌우하는 단골 소재다. 1212년 파리에서 열린 가톨릭공의회는 춤추는 엉덩이는 관능과 탐욕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일요일에 밭을 경작하는 것보다 춤을 추는 것이 더 큰 죄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소외되어온 엉덩이를 예술사와 문화사를 통해 멋지게 재조명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문화부장을 지낸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해박한 지식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엉덩이의 내력을 샅샅이 훑고 있다. '문화와 예술로 읽는 엉덩이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해부학적, 풍속학적, 사회학적, 과학적으로도 엉덩이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알파벳 순서에 따라 엉덩이의 기원, 엉덩이를 씻는 행위, 문학과 예술 속에 투영된 엉덩이의 이미지, 엉덩이를 노래한 에로틱한 풍자시, 엉덩이를 성에 극적으로 이용한 남성들, 순진해 보이는 아기 엉덩이, 엉덩이 고문, 심지어 엉덩이 성형이나 사이버섹스 같은 최근의 관심사까지 고찰한다.

인구가 생산력이었던 원시시대에는 큰 엉덩이가 미덕이었다. 2만년 전 고대인의 손으로 빚어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시뢰유의 머리 없는 여성, 코스첸키의 비너스는 튼실한 둔부를 자랑하고 있다. 인류 문명의 황금기 그리스'로마시대에는 황금률에 입각한 완벽한 엉덩이가 칭송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중세에 들어와 엉덩이는 죄악의 상징이고 저주의 대상으로 핍박받는다. 17세기까지 정상위를 제외한 다른 체위들은 성행위에서 불경한 짓거리로 치부되었다.

엉덩이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었지만 미적 표현의 대상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드가, 르누아르, 루벤스, 툴루즈 로트렉 등 서양 미술의 거장들이 남녀의 엉덩이를 소재로 한 무수한 그림과 조각을 남겼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쉬잔 지루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에 소년의 엉덩이가 감춰져 있다고 주장한다. 모나리자의 미소 띤 입가만 따로 떼어서 90도 각도로 돌려놓고 보면 모나리자 입술의 벌어진 틈은 척추처럼 보이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입가는 멋진 한쌍의 볼기짝처럼 보인다는 것.

몇몇 익살꾼들은 영화배우들의 엉덩이를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마릴린 먼로, 루이즈 브루크는 내부에 원이 완벽하게 그려지는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정사각형 엉덩이를 가진 배우였다. 메이 웨스트, 제인 맨스필드, 잔 모로, 베아트리스 달 등은 위로 긴 직사각형 모양의 일명 호리병형 엉덩이 소유자였다. 아주 멋진 모양을 자랑하지만 빨리 처지는 게 흠이다. 브리지트 바르도, 쥘리에트 비노슈는 가장 처짐이 덜한 형태로 적극적인 여성의 생동감이 잘 드러나는 옆으로 퍼진 사각형 엉덩이를 가졌다.

과거에 엉덩이는 음탕하거나 외설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매혹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엉덩이를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했다. 남성 엉덩이의 이상형은 전보다 덜 남성적인 형태를 지향하는 반면 여성의 엉덩이는 되레 남성화하는 경향을 띤다. 둥글고 우아한 형태 대신 날씬한 근육질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저자 특유의 역설과 정취가 묻어나는 이 책은 엉덩이의 숨은 진면목과 찬란한 발전사를 흥미롭게 조명한 독특한 교양서이다. 336쪽, 1만2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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