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역사 인식은 대개 정치사와 사회사 중심이었다. 교과서가 그렇듯 청소년기에 배우는 역사는 인간의 실제 생활과는 동떨어진 왕조의 흥망과 제도의 변화, 그리고 국가나 민족 같은 추상적이고 거대한 것들을 다루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근래에는 미시사, 생활사, 문화사라는 것이 역사연구의 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때로는 상반되거나 기존의 연구가 놓치고 있는 측면들을 제시하기도 해 역사해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문화사는 일반적인 역사 유물과 유적뿐만 아니라 신화나 민담, 음식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가 또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는가를 말해주는 모든 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딱딱한 거대담론으로 이루어지던 역사 서술에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며, 사람들에게 역사 해석의 열린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불어넣고 호기심을 한껏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최근 역사에 대한 관심은 문화사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문화사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관련 서적이 그리 풍부한 것은 아니었다. 문화사의 방법을 실제로 적용한 책들이 나오지만 미시사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아 전체 역사를 아우르지는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새로운 역사 읽기에 애써온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가 '문화로 읽는 세계사'를 출간했다. 문화사적 역사 인식의 성과와 방법을 원용해 세계 역사를 테마별로 서술한 것이다.
이 책은 멀리 선사시대부터 근'현대 사회에 이르는 역사 속 인간의 삶이 어떠한 문화를 일구어왔는지를 35가지 주제로 살피고 있다. 로마법에 대한 해석이 있는가 하면, 사랑의 문제나 괴물의 계보를 분석하기도 한다. 18세기 기근이 만연하던 시기에 오히려 인구가 증가한 데는 감자와 옥수수 같은 하층민의 음식이 있었음을 소개한 '옥수수, 감자 그리고 기근' 등은 역사의 참모습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제국주의의 희생자로서만 다루어져 그 자체의 역사와 문화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이야기와 아프리카 노예들이 아메리카 문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다룬 '노예', 아무리 광적인 전체주의적 체제라도 사람들의 삶을 모두 장악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 '나치와 청소년 문화' 등은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과 문화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
이 책은 흔히 세계사 책에서 다뤄지는 유적과 유물을 벗어나 고대의 서사시, 민담, 성서, 자서전, 지도, 속담, 소설, 영화 등까지 사료로 삼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안티고네' 같은 고대 문학작품, 사제 요한이 비잔틴 제국의 황제에게 보냈다는 편지, 존 스타인벡의 소설, 영화 '프랑켄슈타인'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을 드러내는 실마리들을 통해 인간의 정신 속에 어떻게 역사의 의미망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주경철 교수는 "문화사적 역사 연구를 현장교육에서 활용하고 싶은 교사 또는 연대기 중심의 정치'사회사적 세계사를 벗어나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참다운 교양으로서의 세계사를 공부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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