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광종은 후주(後周)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958년(광종 9) 4월 16일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처음으로 과거제를 실시했다. 이는 광종의 정치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호족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목적을 띠고 있었다.
초기 과거시험에는 제술과(製述科:進士科)'명경과(明經科)'잡과(雜科:醫卜科)가 있었고 1136년(인종 14)에 이르러 정비됐다. 제술과와 명경과는 문관 등용시험이었는데 제술과에 더욱 비중을 두었다. 이는 고려시대 통틀어 제술과의 합격자 수가 6천 명이 넘었던데 비해 명경과 합격자는 450명 정도였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 밖에 승과(僧科:敎宗試와 禪宗試)가 있었으며, 무신 등용을 위한 무과(武科)는 1390년(공양왕 2)에 와서야 실시됐다.
원칙적으로 과거의 응시자격은 양인(良人) 이상 누구에게나 주어졌다. 그렇지만 경제적 이유 등으로 농민은 사실상 응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 과거제가 실시됐음에도 불구하고 5품 이상인 관리의 자제 1명에 대해서는 과거 없이 관리에 채용하는 음서제도(蔭敍制度)는 사라지지 않았다. 귀족에 대한 특권을 계속 인정했던 것.
과거제는 왕조 시대 왕권 강화 수단이자 인재 발굴의 장이라는 장점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 갔다. 이에 반해 입신양명을 위해 평생을 글만 읽는 비생산적인 계층을 양산해 냈다는 비판도 있다. 전국적으로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고시에 목매달고 있는 요즘 상황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1889년 '희극왕' 찰리 채플린 출생 ▲1982년 중'소, 국경무역 20년 만에 재개 ▲2001년 이봉주 선수,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