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전국 최초로 시도한 종합유통단지 조성사업이 올해로 1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조성 초기 계획했던 테마 상품관 상당수가 특색 없는 잡탕상가로 변했고, 적잖은 상가 사람들이 "손님 본 지 오래"라는 하소연을 늘어놓는 등 썰렁함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시는 올해 유통단지 활성화방안을 마련, 재도약의 기틀을 만들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유통단지는 과연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손님? 없어!
14일 오후 대구 북구 산격동 종합유통단지내 의류관. 북문쪽으로 들어서니 빈 점포가 수두룩했다. 손님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일부 가게에는 물건은 있는데 상인들이 자리를 비웠다.
가게마다 50∼70%까지 '파격 할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파격할인 가게 앞에도 손님은 없었다. 의류가게에 앉아 있던 김모(45·여)씨는 "장사가 안 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류관 2층에 올라가니 온통 가구매장이다. 대구시 유통단지 관련 조례에는 이곳에 가구매장이 들어설 수 없지만 빈 가게를 채우기 위해 의류관 조합 측이 고육지책으로 유치했다. 2층은 아예 가구디자이너스크럽으로 이름도 바뀌었다.
가구매장을 경영하고 있는 박모(36)씨는 "가구점의 특성상 넒은 매장공간이 필요해서 임대료가 싼 이곳에 들어왔다"라면서 "그래도 장사가 잘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유통단지내 가구점은 EXCO안에 들어선 것은 물론, 전자관, 섬유제품관 등에도 뻗쳐 있다. 최근엔 가구점도 너무 많이 생겨 장사가 안 된다고 상인들은 하소연했다.
인근 섬유제품관엔 실제 가구점이 더 많았다. 원래 이곳은 원단, 커튼, 침장 등 섬유제품 도매시장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당초 목적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 가구점이 2층 절반과 3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침장점 주인 박모(34·여)씨는 "재작년부터 가구점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섬유관'이 아니라 '가구관'이 됐다"며 "전자관에도 가구점이 22개나 들어가 유통단지의 상당수 테마 상품관은 이미 특색을 상실한 지 오래"라고 했다.
◆예견된 실패
최근 종합유통단지 활성화 용역을 수행(본지 9일자 8면 보도)한 계명대 산업경영연구소 측은 1990년대 초반 대구시가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에 의존, 유통단지 조성계획을 짰다고 분석했다. 도매기능 위주의 유통집적시설을 만들겠다며 유통단지를 만들었지만 의류·섬유·전자제품류는 도매기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는 것.
더욱이 시는 10년 후 산업구조변화를 생각하지 못하고 당시 대구 주력산업이었던 섬유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섬유관·제2섬유관(후에 전기재료관으로 변화)에다 의류관까지 만들었으며 이후 영업이 잘 안되는 것을 보면서도 대처가 느렸다고 산업경영연구소 측은 풀이했다.
김상순 섬유제품관 상무는 "섬유경기 악화 등 시장상황이 급격히 변화했는데도 시는 용도변경 검토 등 사업방향 수정을 빨리 해주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라며 "테마별 상가 형태를 지나치게 고집, 규제만 쏟다보니 오늘의 결과를 남겼다"고 했다.
조영득 의류관 이사장은 "최초 상가 분양률이 떨어지자 대구시가 억지로 분양받도록 떠밀었으며 투기목적 분양자들까지 들어와, 의류업을 하겠다는 의지와 노하우를 가진 사람은 출발부터 많지 않았다"며 "2001년이나 2002년쯤에만 소매단지로 방향을 바꿔줬어도 이런 참혹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일 전자관 사무국장은 "대구를 대표하는 곳의 하나인데도 버스노선이 6개밖에 없다"라며 "시민들이 쉽게 찾기에는 교통편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수술은 가능할까?
유통단지 활성화 용역안은 현재 고유품목 준수비율을 100%에서 50%로 낮추고 품목자유화를 50%까지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업무 편의시설도 현재 5%에서 최소 8% 이상 늘리도록 했고 의류관, 섬유제품관 등 상권형성이 저조한 테마 상품관(공동관)에는 고유품목 외에 영화관 등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문화집회시설을 추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대구시는 이러한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조정된 고유품목 준수비율이 확정되는 대로 교통정리에 나설 방침이다. 고유품목 준수비율을 낮춰주되 일단 정해진 영역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업자들 뜻대로 수시조정이 불가능하도록 법적 강제력이 미치는 도시계획으로 묶어버리겠다는 것. 시는 이와 관련한 타당성 용역도 발주해 놓은 상태다.
대구시 관계자는 "유통단지를 살리는 방법으로 우선 업종별 품목자유화 비율을 공동관 사정에 맞게끔 조금씩 늘려준 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혼란스런 업종변경이 없도록 막는 방안과 아예 모든 업종 규제를 풀어버리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며 "시는 앞의 방법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올 9월쯤엔 시의 방침이 확정, 시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각 공동관별 이해관계가 워낙 얽혀있어 고유품목 준수비율 완화방안이 용역안 대로 시행될지 의문을 표시하는 업자들이 적잖다. 섬유제품관은 50% 수준이 아니라 고유품목 비율을 모두 없애고 전면 자유영업을 요구 중이며, 전자관은 고유품목이 완화되더라도 다른 공동관에서 전자제품을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공동관은 이미 활성화 기미를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자력회복이 일정 부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류관은 1·2층에 대해 아울렛 사업 본계약을 체결, 9월 문을 열 예정이며 전자관도 주말에 약 1만여 명이 찾는 등 최근엔 영업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 산업용재관은 다른 공동관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활성화됐으며 경남도 등의 외지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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